정부가 내민 의대생 2000명 증원 카드로 의료계가 벌집 쑤셔놓은 듯 소란스러워졌다. 전공의들이 줄줄이 의료 현장을 이탈했고, 뒤이어 대학병원 내 전문의 집단인 전임의들마저 가운을 벗어던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의대생 증원 문제로 촉발된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사태는 역대급 의료 대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 와중에 애먼 피해를 입는 쪽은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뿐이다.빅5 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이후 열흘이 지났지만 양측 모두는 한 발짝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계는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고,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가 열리기 직전의 일이었다. 당시 한국조직위원회(KOWOC)는 뜻하지 않은 난제를 만나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서구를 중심으로 일었던 개 식용 반대 캠페인이 그것이었다. 캠페인을 주도한 이는 프랑스의 유명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였고, 타깃은 야만스러운(?) 한국인이었다. 그녀는 한·일월드컵대회 개최 수 년 전부터 국내외 유관 기관에 항의 서한을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활발히 개 식용 반대 운동을 벌였다.사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 반응은 견뎌낼 만한 정도였다. 한국조직위 입장에서 신경 쓰이는 것은 해외 반응이
갑진년 새해에 품은 소망들 중엔 예년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일차적 소망이야 으레 그렇듯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사는 것이지만, 이번엔 그 못지않게 절실한 게 하나 더 생겨났다. 정치인들로부터 막말과 거짓말 좀 안 듣고 사는 게 그것이다.최근 수년간 정치인들, 특히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뿜어낸 언어공해로 인해 느낀 불쾌감을 생각하면 늘 분노가 치민다. 대표적인 예가 ‘짤짤이(사실은 XX이)’나 ‘암컷’, ‘금수’, ‘발목때기를 분질러놔야’,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 등등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로 추잡한 범죄 혐
정부와 의사 단체가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겉보기엔 대립 구도가 일대일인 듯 비쳐지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무모한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단체를 정부와 대학이 합세해 압박하고 있는 게 지금의 실상이다. 언론도 정부의 원군으로 가세하고 있다. 여론 또한 의사들에게 비우호적이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정도로 대변되는 의사집단으로서는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세 불리 탓에 의사집단의 목소리는 크게 부각되지 못 하고 있다. 더구나 언로마저 정부와 언론에 장악당한 마당이니 의사단체의 의대 정원 관련 주장
대학 입시 제도가 또 바뀐다. 현재 중학교 2학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2028학년도부터 새로운 입시 제도를 적용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새 입시제의 골자는 문·이과 불문하고 선택과목 없이 똑같은 통합과목으로 수능을 치르게 한다는 것과 내신 9등급제를 절대평가·상대평가 병행 방식의 5등급제로 바꾼다는 것 등이다.큰 폭의 변화에 지금의 중2는 물론 현행 입시제에서 마지막으로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중3, 그리고 그 학부모들 사이에선 난리가 났다.내용을 두고도 여지없이 비판과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판의 주 내용은
가끔 손에 잡는 책이 명심보감이나 채근담, 탈무드 등이다. 명심보감이니 채근담이니 했지만 사실은 모두 역서(譯書)들이다. 오래 소장해온 이 책들은 곳곳에 메모가 곁들여져 있어서 내겐 제법 귀한 물건들이다.동서의 명저들인 이 작품들엔 묘한 끌림이 있다. 그래서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이 책들을 눈으로 훑듯 읽어내리곤 한다. 심란함을 달래주거나 공감할 수 있는 문구 또는 이야기를 찾아보기 위함이다.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명심보감 천명편(天命篇)의 ‘순천자존 역천자망(順天者存 逆天者亡)’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살아오면서 늘 기억하려 한
요즘 언론계에 만연해진 것 중 하나가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He Said She Said 저널리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른 바 ‘카더라~’식 보도의 상당수가 그에 해당한다. 인용보도를 같은 의미로 쓰는 이들도 있지만, 이 말은 언론계에서 대체로 다른 개념으로 통용된다. 소위 ‘물 먹은 기사’가 있는데 당장 팩트 확인이 안 되는 경우 최초 보도 매체명을 명기하면서 기사화하는 것을 보통 인용보도라 부른다. 정당하고 솔직한 보도행태라 할 수 있다.따옴표 저널리즘은 누군가의 말을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 전달하는 보도 행태를 지칭
광고 기법 중에 ‘부정적 소구’라는 게 있다. 광고학에서 3B를 논할 때 비교대상으로 자주 다뤄지는 개념이다. 3B는 미인(Beauty), 어린이(Baby), 동물(Beast)을 지칭한다. 이들을 소재로 광고를 하면 소구(訴求) 효과가 크다는 것이 광고학에서의 정설이다. 3B는 친근감과 호감을 유발함으로써 소기의 광고효과를 얻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소구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그에 대비되는 것이 부정적 소구다. 불안감·공포감 등을 조장하면서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게 유도하는 광고 기법으로서 화재보험 등의 상품 광고에 이
이건희 삼성전자 전 회장은 생전에 대한민국 정치를 4류로 평한 바 있다. 1990년대 초 보수 정권 시절에 내놓았던 그 평가는 딱히 특정 진영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보수·진보,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이 3류인 관료들 이상으로 세도를 부리며 2류 정도는 되는 기업들의 발목이나 잡는 저급한 집단임을 강조하고자 한 발언이었다.되돌아보면 이 회장이 기업가로 활동하던 시절엔 그래도 정치에 등급을 매기는 게 가능했다. 나락 끝까지 떨어진 줄 알았던 당시의 정치가 오늘날보다는 나았었다는 의미다. 시중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도 수리비에
“잔말 말고 와”박영수 특검의 이 한마디가 윤석열 검사를 대통령 자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후일담으로 공개된 이 말은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게 된 박 특검이 그 즈음 윤석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에게 전화로 한 말이었다. 특검팀에 합류하라는 검사 특유의 화법이었다. 특검팀 합류는 윤 검사를 정치적 대어로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를 가장 뜨겁게 지지한 쪽은 진보 진영이었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 대한 열의를 보고 그를 자기편이라 착각한 것이 윤석열 검찰총장 및 대통령 탄생의 결정적
국내외 정치 지도자 중 감성적 소통에 능했던 인물들을 꼽으라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맨 앞자리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필자의 기억 속에서는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능력에 관한 한 그를 능가할 사람은 없었다. 타고난 성품의 자연스러운 발로였는지, 습득한 기교 덕분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타인의 감성을 자극해 공명(共鳴)하도록 유도하는데 탁월했다.군통수권자이면서도 군 장교 옆의 구석진 자리에 점퍼 차림으로 웅크리고 앉아 미군의 테러조직 수장 사살작전을 지켜본 일, 흑인 교수와 공무집행 중이던 백인 경찰 간의 언쟁이 인종
1987년 민주화 항쟁 이전에 설립된 한 신문사의 사사(社史)를 읽다가 흥미로운 기록들을 접한 적이 있다. 사사에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 자사 신문이 정간(停刊) 당한 일들까지 세세히 정리돼 있었다. 그 당시 신문사들은 며칠씩 간행 정지를 당하곤 했다.정간 이유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없는 일로 정간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대통령’을 ‘대령’으로, ‘여사’를 ‘여시’로 잘못 표기한 채 신문을 발행했다가 당국으로부터 치도곤을 맞곤 했다. 한자 표기가 일반화돼 있었던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