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마다 하루하루 살기 바쁜 현대인들의 발목을 잡는 감기-. 수시로 걸렸다 낫기를 반복하는 흔한 병이다 보니 감기 증상이 찾아오면 누구나 빨리 낫기 위한 나름의 비법 한 두 가지 쯤은 갖고 있게 마련이다. 사우나에서 땀을 ‘뻘뻘’ 흘린다거나 밥 든든히 먹고 푹 잔다거나 감기약을 일찌감치 지어먹거나 주사 한방으로 해결한다는 등 그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여러 방법 중에서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무엇보다 가장 선호하는 것은 병원 또는 약국에 가서 간단히 감기약 처방을 받는 것이다. 감기는 치료약이 없으며 푹 쉬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작정하고 쉬는 것이 쉽지 않은 터여서 누구나 툭툭 털고 일어나길 원한다. 그러다보니 단지 증상을 완화할 뿐인 감기약을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입안에 마구 털어 넣기 일쑤다.

행여 감기에 걸리면 빨리 낫게 해주는 그 병원과 그 약국에서 감기약을 먹고 오래 고생하게 되면 “돌팔이 아냐, 감기약 하나도 제대로 지어 주지 못하냐.”며 다른 병원과 약국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감기약 숫자가 더 많이 늘어나도 꼭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또다시 입안에 흔쾌히 털어 넣는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자식들이나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감기 증상이 보일라치면 얼른 약 먹으라고 권한다. 감기에 걸려 시름시름 앓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짓이며 감기약을 무슨 보약이라도 되는 양 복용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기 치료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실로 놀랍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도 상반기 감기(급성호흡기 감염증)의 외래 진료비는 8천6백52억원으로 조사됐다. 암의 입원진료비가 8천3백30억 원인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감기 환자의 외래 진료비에는 약국의 약제비가 제외된 수치이므로 약제비를 포함할 경우 그 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 2008년 1/4분기의 감기 환자는 약국을 제외한 외래진료건수 총 1억8백13만 건 중 19.7%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건강보험지출급여비용도 3945억 원에 달해 전체 비용(3조 2천9백75억 원)중 12.0%를 차지했다. 가히 대한민국은 ‘감기’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대근 서울대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감기는 리노바이러스로 대표되는 200여종의 감기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염 병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저항력 약화 병이라는 것이 옳다. 감기 바이러스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수시로 우리 몸에 침투하는데 감기에 걸리고 걸리지 않음은 바이러스가 아닌 내 몸의 저항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면서 “감기 증세가 심하고 오래 가는 것도 사실은 바이러스의 독성이 심해서라기보다는 몸의 저항력이 약해서이다. 따라서 감기는 내 몸의 변화를 감지하여 체력이 약해졌음을 경고하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감기에 걸렸다는 것은 무리를 했거나 체력이 거의소모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감기에 걸리면 ‘일만 하지 말고 이제 건강도 챙겨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아울러 감기는 자주 걸릴수록 몸의 면역력을 키우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저항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감기에 가장 좋은 처방은 거꾸로 우리 몸의 저항력을 높이는 것이며 가장 좋은 실천 방법은 충분한 휴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쉴 틈이 없다. 불안 경쟁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치열한 생존게임에 치여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약 몇 알 먹고 “대충 그까이꺼” 하는 식으로 견뎌내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빨리 빨리 병’은 더욱 부추긴다. 이러다보니 우리 사회에서는 감기에 대한 처방이 아주 특별하다. 마치 대한민국의 감기만 아주 특별한 것처럼 말이다.

EBS 지식채널 ‘건강’ 01 몸의 이해라는 책을 보면 대한민국 감기 치료의 적나라한 현장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이미 이것은 EBS 다큐프라임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EBS 다큐프라임 <감기>팀은 한국과 미국 네덜란드 영국 독일에서 실제 감기 증상을 가지 고 있지 않은 모의 환자가 한국과 각국의 병원을 찾아가 가벼운 초기 감기 증상에 대해 의사의 진료를 받는 실험을 가졌다. 그 결과 한국의 병원 7곳에서는 적게는 2.2개부터 많게는 10개의 약을 처방했으며 모든 병원에서 주사제를 권유했다. 하지만 외국은 달랐다. 미국과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의 어떤 병원에서도 단 한 개의 약도 처방받지 않았다. 외국의 의사들은 “담배를 줄이고 휴식을 취하며 비타민을 섭취하라”는 처방만을 내렸고 “왜 약을 처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바이러스 감염증인 감기는 시간이 지나면 절로 낫는 병인데 뭣 하러 부작용의 위험이 있는 약을 복용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처방한 감기약을 보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에는 거담제(가래를 제거하는 약물), 진통제(통증을 경감시켜주는 약물), 진해제(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물), 항생제(미생물의 발육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약물), 해열제(병적으로 높아진 열을 정상으로 내리게 하는 약물), 항히스타민제(히스타민의 작용을 막아 콧물이 흐르는 것을 줄여주는 약물) 등이 포함 돼 있었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병원내과 주임 반 덴 브링크는 “이 약들 중 어느 것 하나도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효과가 없는 것에 왜 돈을 낭비해야 하나? 만약 우리부서에서 누군가 이렇게 처방한다면 그 사람은 당장해고다.”고 말했으며 존스 홉킨스병원 아동센터의 한 의사는 “일반 감기에 항생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 아주 치명적이다. 환자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면역 문제 때문이다. 항생제는 세균을 없애지만 몸에 필요한 세균까지 없앤다.”면서 항생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한데 우리는 왜 이토록 감기약을 즐겨(?) 복용하는 것일까?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감기약을 자주 복용하다보면 잘 듣지 않는다며 더 강하게 지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러다가 한 외국 의사의 경고처럼 개인은 물론이요, 우리 사회 전체의 면역력이 약화되는 사태를 초래하는 것은 아닐지 두려운 상황이다. 환절기마다 앓게 되는 감기, 이제 약과 주사로 낫게 하겠다는 생각은 접어두어야 한다. 치료가 아닌 증상 완화를 위해 먹는 감기약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는 서서히 우리 몸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감기의 불편한 진실을 정확히 꿰뚫고 가급적 감기에 대한 약의 과도한 의존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줄여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감기로  돈을 버는 병원과 약국이 즐비한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우섭기자 / 도움말 = 이대근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 참고 = 지식채널 <건강01 몸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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