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축구화를 신고 이기기 위해 경기장에 들어간다."(울리 슈틸리케 감독)

"힘든 경기가 되겠지만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주장 기성용)

한국 축구대표팀 슈틸리케 감독과 주장 기성용이 원정길에 오르면서 나란히 던진 출사표다.

한국 대표팀은 3일 기성용(스완지), 손흥민(토트넘) 등 지난달 29일 조기소집된 13명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서 합류한 황일수 이창민(이상 제주) 등 모두 15명의 멤버로 출국했다.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나머지 9명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차려지는 사전 훈련캠프에 가세하면 14일 오전 4시(한국시간) 카타르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 원정경기에 나설 진용이 모두 갖춰지게 된다.

한국은 A조에서 4승1무2패(승점 13)로 이란(승점 17)에 이어 본선 직행권인 2위를 달리고 있다.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2)에는 1점 차로 쫓기고 있어 이번 도하 결전이 러시아 직행 여부를 가늠하는 최대 승부처다.

12일 이란이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원정팀의 무덤' 테헤란에서 이기면 본선 진출이 확정된다. 이럴 경우 한국이 1승1무5패(승점4)로 최하위인 카타르를 꺾으면 본선행 '8부 능선'을 넘게 된다. 물론 한국이 카타르에 충격패를 당하는 '도하 악몽'에 빠진다면 8월 31일 이란과 홈경기를 앞두고 슈틸리케 경질론이 재점화될 수 있다.

한국이 이렇듯 러시아 가는 길이 험로에 빠진 것은 원정 허약증 때문이다. 한국은 홈에서 4전 전승을 거둬 '안방 호랑이'였지만, 집만 나서면 '원정 고양이'로 바뀌었다. 중립지역에서 벌어진 시리아와 어웨이 매치를 0-0으로 비기더니 이후 이란, 중국에 2연패를 당해 한 번도 승전보를 전해오지 못했다.

한국이 최종예선에서 홈-어웨이 성적이 이렇게 천당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갈린 적도 없다. 슈틸리게 감독의 퇴진론이 불거진 것도 지난해 10월 이란 원정 0-1 참패 , 지난 3월 중국전 0-1패의 '창사 참사'로 원정길에서 번번이 고개 숙이며 돌아왔을 때였다. 이겼다 하면 1골차로 진땀승을 거뒀고, 졌다 하면 역시 1골차로 패했기에 '무색무취'의 경기력마저 도마 위에 올랐다.

위기의 슈틸리케 감독은 두바이로 출정하면서 "최근 대표팀이 많은 비난을 받았다"며 "나도 이 선수들을 이끌고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팀을 한 번만 더 믿어주시고 성원해 주시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감은 취임 이후 사상 처음으로 조기소집을 통해 '출퇴근 훈련'으로 콤비네이션을 다질 수 있었던 데서 나온다. 그래서 8일 오전 2시 두바이에서 벌어지는 이라크와 평가전에서 그 자신감을 확실히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도하의 찜통더위 적응력도 점검하면서 지난해 10월 수원서 카타르를 3-2로 이길 때의 호흡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당시 집념의 골 퍼레이드를 펼친 기성용,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손흥민의 공격 조화가 이라크전에서 예열된다면 원정 첫승과 첫 멀티마진 쾌승도 가능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일찍 소집 훈련에 합류했던 선수들은 컨디션도 좋고, 무엇보다 의지가 충만해 있다"며 "이런 분위기가 나중에 합류하는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최근 최종예선에서 감각이 떨어졌으나 잉글랜드에서 21골로 아시아선수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세운 손흥민을 축으로 하는 공격에 승부를 걸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이 어느 포지션에서 뛰든 골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뒤 비행기에 올랐다.

캡틴 기성용도 "이번에는 소집 기간이 길어 호흡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됐다"며 "지금까지 훈련은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맞춰졌다면 이제 두바이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실력에 비해 기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는 기성용의 말처럼 혹독한 원정징크스를 떨쳐내고 러시아행 활로를 활짝 열 수 있을지, 두바이 캠프에서 다지는 자신감을 이라크전부터 확인해볼 일이다.

박인서 기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