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시장에 들러 넥타이 풀고 국민들과 소주 한잔 나누는 소탈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 문재인이 꿈꿔온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제시한 선거 공약집 중 ‘광화문 대통령’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의 감성을 한껏 자극한 이 약속은 실제로 큰 소구(訴求) 효과를 발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재인은 ‘10대 공약’을 통해 ‘광화문 대통령’이 되기 위한 실천방안도 제시했다. 그 내용은 정치 분야 공약의 맨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무실 이전 약속이다. 이전 대상 건물은 광화문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정부서울청사 등이다.

문재인에게 광화문광장이 갖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한동안 주말 밤마다 광화문광장을 백야처럼 밝힌 촛불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박근혜 정권의 임의적 실정은 국민들의 심판을 자초했고, 결과적으로 보수 진영 전체를 궤멸시키다시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더구나 다자구도로 치러진 지난 대선은 문재인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것 만큼이나 수월한 게임이었다. 

문재인에게 광화문광장은 선거운동의 시작이자 끝 지점이었고, 나아가 대통령 당선 수락 연설을 한 곳이다. 대선에 앞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면 문재인의 ‘광화문 대통령’ 표방은 선거 캠페인 전략을 넘어 국정 운영의 지지 기반을 다지는 방안일 수도 있다.

취임 이후 그의 행보로 보아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닌 듯 여겨진다. 2012년 숨가쁘게 진행되던 대선전 막판에 이 공약을 다급하게 들이밀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확실히 이번엔 그 때와는 다른 강렬한 실천 의지가 느껴진다. 실패한 대통령의 대명사로 역사에 길이 남을 박근혜의 유별난 불통 이미지는 문재인의 광화문행 결의를 더욱 다지는 요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집무실 이전은 어떻게 해서든 곧 실행 단계에 들어설 것 같다.

집무실 이전 공약에 담긴 의도는 신선함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이상 큰 공감을 얻을만한 공약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문재인의 의지에 정치적 계산이 배어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광화문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그의 염원에서 어느 정도의 순수성이 읽혀지는 것도 사실이다. 출퇴근 때마다 정부청사 입구에서 차창 밖을 향해 손을 흔드는 대통령, 때론 광화문광장에 나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담소하는 대통령, 청계광장을 지나고 서울광장을 돌아 남대문시장으로 걸어가서는 좌판에 앉아 시민들과 소주를 마시는 대통령,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진 모습인가? 그렇게 해서 온 나라가 평온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쯤에서 국가적 삶의 질을 좌우할 정치 또는 국가행정이라는 상품이 무한정한 감성 마케팅의 대상이 되어도 좋은가에 대해 회의해볼 필요가 있다. 소통의 효용 대비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의 청와대 밖 이전은 여러 부작용을 예고하는 일이다. 그런 만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신중한 고려와 다각도의 검토를 거친 뒤 실행해도 늦지 않다. 집무실 이전이 대통령 공약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지는 듯한 현재의 상황이 썩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국운을 가를 중차대한 사안들이 산적한 현실을 돌아보면, 집무실 이전이 국가적 의제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집무실 이전 자체가 몰고올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자는 선의로 한다손 치더라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게 되고 행정 서비스의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대통령 경호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됐고, 앞으로 더 완화하겠다고는 하지만 대통령 경호는 주위에 엄청난 불편을 안긴다.

전통적으로 대통령 외곽 경호는 VIP를 중심으로 한 반경 200m 범위를 기본으로 이뤄져왔다. 그래서 일명 ‘200근무’라는 은어로 통용되곤 했다. 경비근무 원칙상 대통령이 출입하는 문의 초병이 권총을 차고 있다면 거수경례도 금지된다. 오른손 거수경례가 총을 뽑는 동작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어서이다. 대통령이 청와대 이외의 건물에 머무는 동안엔 해당 건물로의 신문배달이나 우유배달조차 모두 금지된다. 대통령 경호가 그만큼 주변 일상의 흐름을 바꾸거나 경직시킨다는 얘기다.

5공 시절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광화문광장 옆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지금의 역사박물관 자리)를 자주 방문했다. 경제를 챙기기 위한 행보였지만, 그 때마다 경제부처 공무원들과 민원인들은 엄격한 시집살이를 치러내야 했다.

대통령의 안위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는 점도 문제다. 군사적 긴장이 팽팽한 현실 속에서 경호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장소에 굳이 대통령 집무실을 차려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게다가 최고의 정보보안 시설인 대통령 집무실이 미국 대사관의 코앞으로 이동한다는 점도 이래저래 마뜩하지 않다. 

대통령 집무실의 청와대 밖 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는 차기, 차차기 정권에 대한 고려도 수반돼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워낙 개성들이 강한 대통령을 연이어 맞이하다 보니, 정권마다 부처 이름이 대폭 바뀌고 각종 제도가 손질되는 바람에 국민들은 어지러울 지경이다.

상징성은 있을지언정, 집무실 이전이 실질적으로 소통을 보장해줄 리도 없다. 대통령이 광장이나 시장통에 나간다 한들 어차피 5000만 국민을 일일이 다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하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에 대한 대통령의 실천 의지다. 참모 또는 장관들과 청와대 뜰의 통나무 의자에 앉아 격의 없이 토론하고, 여당보다 야당 지도자들을 더 자주 청와대로 초청해 대화한다면 그게 가치 있는 소통이다.

그에 더해,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춘추관으로 찾아가 기자들로부터 껄끄러운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골치아픈 국정 현안에 대한 솔로몬의 해답은 기자들의 불편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여론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은 기자회견이다. 마냥 달가울리는 없겠지만 기자회견이야말로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실속 있는 소통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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