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지 H. W. 부시 행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낸 토드 부크홀츠는 정치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가 말한 건 소위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다. 요지인 즉, 선출직 공무원은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유권자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치는 공공선을 위해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정치인의 본색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속내가 무엇이든 실제로 드러나는 언행이 유권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면 그만이다. 정치 지도자가 거짓말쟁이이든 비호감이든, 저급한 품격의 소유자이든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인의 용단 어린 행동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악인이 악을 숨기고 유권자를 의식해 정책 결정시 선한 선택을 한다면 그 걸로 족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 때의 ‘선’은 당연히 공공선을 의미한다.

여기엔 꼭 필요한 전제가 있다. 정치인 또는 정치 지도자가 유권자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정확히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파고 들자면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소통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경무대 안에서 인의 장막에 갇혀 지냈다는 이승만이 각료의 간언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고, 무소불위의 철권을 휘둘렀던 전두환이 측근의 조언에 노태우로 하여금 6.29선언을 하게 한 것도 그나마 묻는 입과 듣는 귀가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이 지경에 와 있는 건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도 미치지 못한 소통 노력 때문이었다. 현재 무모한 버티기를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소통 없이 자기만의 정신세계에 갇혀 있으니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리 만무하다. 그가 기자회견은 둘째 치고, 참모들과의 대면조차 거의 행하지 않았다고 하니 불통의 정도가 어땠는지 알 만하다. ‘세월호 7시간’ 논란이 일어난 배경에도 불통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어차피 전화보고나 온라인보고, 서면보고가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면 대통령이 집무실로 출근을 했든, 관저에서 ‘재택근무’를 했든 청와대 사람들에게는 문제될 게 없었을 것이다.

기자회견은 물론 질문받기를 싫어하고, 장관이나 참모들의 독대 보고를 꺼렸던 이유가 즉문즉답에 대한 자신감 부족 때문이었는지, 그릇된 권위주의 탓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추론하자면 둘 다 이유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불통 외에 현 사태를 몰고 온 박근혜의 또 다른 내재적 요인은 정권과 국가의 개념에 대한 혼동이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때문인지 박근혜는 늘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아버지 박정희가 국가에 대한 ‘충’을 유난히 강조하며 실은 정권에 대한 충성을 유도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박정희가 그랬듯 박근혜는 유별나게 ‘국가’와 ‘국민’이라는 단어를 즐겨 입에 올린다. 그런데 결과를 따져보면 애국과 애민은 늘 자신에 대한 충성과 추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친박’과 ‘배신자’, ‘진실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잣대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이었다. 거기에 보편타당성과 합리성이 개입될 여지는 없었다. 오죽 했으면 박근혜와 측근의 관계를 ‘아씨와 머슴’에 비유하는 이들까지 있었을까? 박근혜에게 ‘짐은 곧 국가’였다.

박근혜에 비하면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민심을 살피고 그에 반응하는 감각이 잘 발달돼 있는 정치인이다. 여론을 감지한 뒤 실행하는 능력도 있는 편이다. 그에겐 관조의 능력이 있다. 그런 만큼 그의 행동에서는 유연함이 엿보인다. 애써 보스 기질을 과시하려 하는 듯 보이지만 때론 물러설 줄도 안다. 이는 그가 박근혜와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좋게 평가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김무성의 행동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보스 기질이 있는 듯 비치지만 극한상황에서 총대를 메고 앞서 나가는 결단과 결기를 드러내는 일은 좀체 보기 어렵다. 그 탓에 유연함은 변화무쌍함으로 평가절하되고, 물러남은 양보로 평가받는 대신 용기 부족으로 매도되기 일쑤다. 유승민 의원의 새누리당 원내대표직 퇴진 때 그랬고, 20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친박들의 망나니 칼춤 마당에서도 그랬다.

위기 때마다 김무성은 대의명분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택했다. 결단해야 할 순간에 결단하지 못했다. 결국 위의 두 차례 사건은 보수 진영 최우량주로 평가받던 김무성이 군소 대권 주자 중 한명으로 형편 없이 추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 김무성이 얼마 전 재빠른 변신을 시도했다. 본인의 노림수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듯 그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정치적 기류 변화에 편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그가 대표적 개헌론자라는 점,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선호한다는 점 등을 두루 감안하면 대선 불출마 선언의 정치적 의미는 대단하다고 할 수 없다. 울림이 적으니 감동도 반향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과거에 스스로 내놓았던 차기 총선 불출마 약속은 이미 유야무야되어 가는 분위기다. 대선 출마 포기 선언시 그가 낭독한 회견문에서 ‘총선 출마 포기’라든가 ‘선출직 출마 포기’ 등의 표현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뒤 친문(親文)을 제외한 모든 정치 세력의 개헌 요구가 봇물 터지 듯 쏟아져 나오리라는 점,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축소가 개헌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란 점까지 감안하면 그의 대선 불출마 선언은 영악스럽다는 느낌마저 안겨준다. 그가 노리는게 이원집정부제 하의 실세 총리이든, 내각제 하의 내각 수반이든 그 느낌은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점은 김무성의 대선 불출마 선언이 민심의 요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직설하자면 그의 불출마 선언은 아니 함만 못한 일이었다. 현 정부 탄생에 일익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책임지고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가 내려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표면적 이유는 거창했지만 실제로는 대선 출마 준비를 위해 당 대표직을 내려놓았던 일이나, 이번에 가능성 없는 대권 도전의 꿈을 접은 일이나 유권자들에게는 도긴개긴이다. 그보다는 보수 재건을 위해 친박 패권주의 청산에 남은 정치 인생을 걸겠다고 선언하고, 이합집산을 위한 행동에 돌입하는 것이 보다 진정성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게 확실하게 박근혜를 뛰어넘는 길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공공선의 실현 원리에도 부합하는 방법이었다. 그에겐 아직 스스로 택하길 주저하는 사즉생의 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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