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주제 같지만 그 중요도 만큼은 어느 국정 현안 못지 않은게 한자 표기 문제다. 이 주제는 민감성으로 따져도 다른 현안들을 압도한다. 주제의 속성이 그렇다 보니 워낙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어서, 끝장 토론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안타깝지만 이 문제를 놓고 정색하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과히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굳이 논란에 끼어들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새삼 거론하는 건 한자가 사라져 가는데 대한 일종의 두려움 탓이다.

한자가 빠르게 사라져 가는 대표적 현장이 국회다. 한자 추방을 애국으로 가정한 뒤 기관별로 공과를 따진다면 국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애국적인 집단이란 칭송을 들을 만한 곳이다. 국회는 현재 의장석 명패와 금배지의 글씨를 모두 한글로 표기하고 있다. 2013년 한글날을 계기로 ‘議長’이 ‘의장’으로 바뀌었고, 그 이듬해엔 운영위원회의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의원 배지의 글씨를 한글 표기로 바꾸기로 했다. 의원선서문도 모두 한글로 바뀐지 오래다.
  
그런 가운데 지난 한글날을 맞아 국회의원들의 명패 표기에 관한 기사가 몇몇 매체에 소개된 바 있다. 보도 내용을 보니 현재 한자 명패를 쓰는 의원은 모두 9명이었다. 동명이인과의 구분을 위해 한자 명패를 쓰는 이도 있고, 나름의 소신을 기반으로 한자 표기를 고집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국회가 그 동안 한자 추방에 발벗고 나서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보도를 보고 내심으로 꽤나 놀랐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연령대로 보아 아직 대부분의 의원들은 호적에 한자 이름을 등재했을 법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국회의원이면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름 석자는 남기고 가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이라면 아이덴티티가 보다 확실한 한자 이름으로 의정 활동을 펼치는게 합리적이라 여길 줄 알았다.

300명 중 9명밖에 안되는, 명실상부한 소수자인 의원들은 저마다 한자 명패 사용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 중 특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의 말이었다. 김 의원은 “한자 사용의 흐름이 끊기면 과거의 문서와 기록들은 사실상 암호로 남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대표적 국가들인 한·중·일 가운데 유일하게 한자를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우리에게 경종이 될 만한 말이다.

한자 사용을 논하기에 앞서 한자어의 존재 가치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부 오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자어는 엄연히 우리 국어의 일부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국어도 순우리말과 외래어로 구성돼 있다. 외래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한자어다. 그 다음 많은 것이 영어에서 온 외래어이지만 한자어에 비하면 그 쓰임새는 조족지혈이다.

한자어가 없다면 우리 국어는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린다. 특히 추상명사, 관념어 분야에서는 거의 대부분 한자어가 순우리말의 빈틈을 대신 메워주고 있다. 순우리말만 놓고 보자면 한글은 볼품 없는 기형 언어가 되고 만다. 한자어를 배제한 순우리말은 꾸밈말(부사나 형용사) 쪽이 기형적으로 발달해 있는 언어라는 평을 듣는다. 필자의 생각에 앞서 많은 언어학자들의 평가가 그렇다.

관념어가 빈약하다는 것은 순우리말이 갖는 결정적 결함이다. 그 같은 결함을 문학적, 철학적, 나아가 관념적 사고의 빈곤과 연결시키려는 시각도 있다.

한자어는 좋든 싫든 우리말의 중요한 한 축이 되어버렸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자어 표기를 음만 이용해 한글로 표기하자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모든 학교 교과서의 경우 표기는 한글화하더라도 필요할 때 최소한으로 한자 표기를 괄호 속에 병기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자 교육을 실시하는게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싶다. 그래야 전 국민이 한자어의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 보다 정확하게 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초등학교 공교육 단계에서부터 한자 교육을 실시한다면 신문 기자나 방송국의 아나운서, 앵커들이 ‘유명세(有名稅)를 탄다’라거나 ‘묘령(妙齡)의 중년 여인’ ‘부사관 이하 모든 국군 장병(將兵)’이라는 등의 엉터리 표현을 하는 일들은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다. 위 사례 중 ‘부사관 이하 모든 국군 장병’이란 표현은 청와대가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군에 특별 간식을 주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쓴 문구다.

이 예들은 우리의 언어생활이 얼마나 엉터리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한자어 오용이 정교함과 적확함을 필수 요건으로 삼는 학술문이나 법령 쪽에 그대로 전이된다면 끔찍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한자를 조금만 배우고 나면 그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유익함과 편리함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이점이 조어 능력 및 창의적 표현 능력의 확장이다. 국어 문장에 대한 이해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유익함과 편리함을 대변해주는 요소다.

따지고 보면, 한자 공부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굳이 한문(漢文) 입문 단계까지 나갈 것도 없이, 천자문 속 한자만 제대로 공부해도 언어 생활 속에서 한자어를 이해하는데 거의 부족함이 없다.

한자 공부는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은게 개인적 욕심이다. 자녀를 글 잘 쓰는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라면 만사 제쳐두고 한자 교육부터 독려하시라. 글쓰기 훈련의 고전적 방법인 다독(많이 일기), 다상량(많이 생각하기). 다작(많이 쓰기)이 긴 시간을 요하는 과정인 반면, 어휘 구사 능력을 풍성하게 늘려줄 한자 교육은 단기간에 긴 효과를 보장하는 경제적 방법이다.

어린 자녀를 공부 잘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 역시 아이들에게 천자문부터 가르치도록 권하고 싶다. 초등학교에서 ‘고기압’이란 단어를 배운 뒤 무작정 수백 번에 걸쳐 그 뜻을 외는 아이와 해당 한자어의 뜻을 이해하는 아이 중 누가 더 쉽게, 그리고 오랫동안 정확한 개념을 머릿속에 담을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답은 분명해진다.

한자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음으로써 멸종 위기에 처해가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한자는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여전히 유용하고도 필수적인 문자다. 현명한 사람에게 한자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 뿌리를 모르고서는 한자어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고, 한자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올바른 국어생활이 불가능하다. 한자 지킴을 위한 사명감 따위를 말하려는게 아니다. 다만, 각자가 필요성을 간파하고 자신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한자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자는 얘기다. 분명히 강조하건대, 한자 추방을 애국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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