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또 한번 돈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조윤선으로서는 박근혜 정권 초기 여성가족부 장관에 지명된 직후에 이어 두 번째로 맞이한 통과의례였다. 이번에도 결과는 싱거웠다. 맨손으로 소라도 잡을 것 같았던 야당들은 기세만 장했을 뿐 결정타 한방을 들이밀지 못했다. 고작 내세운 무기라는게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사는 것 아니냐’고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 정도였다.

야당들이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줄곧 목청 높여 떠들어댄 이야기의 핵심은 그 정도였다.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 이상은 청문회에서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과문해서였는지 몰라도, 필자가 보고 듣기로는 그랬다. 그러다 보니 결국 조윤선에게는 그냥 돈 많은게 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게 정말 죄일까?

이번 조윤선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야당의 전술은 빈곤하고 치졸하기까지 했다. 기껏 한다는게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감성에 호소해 조윤선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이성적인 반감을 자극하려는게 그들의 목적인 듯 보였다. 이전의 적지 않은 청문회 스타들이 보여주었던 촌철살인의 논리와 논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윤선 청문회가 풀었어야 할 과제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친절하게 제시돼 있었다. 중요한 것은 생활비를 일년에 5억원씩이나 썼다는게 아니었다. 5억이든 10억이든 정당하게 번 돈을 정승처럼 썼다면 전혀 문제될 것 없는게 돈이다. 건전하게만 쓴다면 오히려 애국의 수단이 될 수 있는게 돈이기도 하다. 부자들이 돈을 안쓴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조윤선을 둘러싼 생활비 논란의 핵심은 여가부 장관 퇴임 후 3년 8개월 간 부부가 벌어들인 23억 4000만원 중 18억 3000만원이 어디로 사라졌느냐는 것이었다. 상당량의 증발이 의심되는 이 액수는 해당 기간의 수입에서 재산 증액 신고분 5억 1000만원을 뺀 나머지 부분이다.

문제의 18억여원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3년 8개월 동안 모두 소비했거나 아니면 재산 신고시 누락시켰거나.... 또 하나의 경우의 수를 들자면 일부를 쓰고 나머지 대부분은 누락시켰거나 정도일 것이다. 굳이 따져보자면 후자 쪽에 혐의를 두는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청문회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예리한 추궁의 목소리도, 상대를 몰아세울 자료 제시도 없었다. 18억여원 중 대부분의 사용 내역이 불분명했다는 점도 이번에 가볍게 넘어가버렸다. 청와대는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조윤선의 재산을 52억992만원으로 밝힌 신고내역을 첨부했다.  

조윤선의 남편이 국내 굴지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공정위원회 관련 사건을 다수 수임한 배경을 전혀 밝혀내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조윤선이 18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할 당시 그의 남편이 수임한 사건 34건 중 26건이 공정위 관련이었다면 합리적 의심을 하는게 자연스럽다. 주지하다시피 공정위는 국회 정무위의 감사를 받는 기관이다. 이로 인해 청문회를 앞두고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방지 규정 위반 혐의가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이었다.

이번 조윤선 인사청문회도 결국 태산명동에 서일필이 되고 말았다. 지금처럼 야당의 내용 없는 악쓰기와 청와대의 임명 강행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장관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 할 수 있다. 하긴 청문회를 전후해 온갖 비리 의혹이 제기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까지 임명이 강행되는 마당이니 청문회에 기대를 거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야당 의원들이 악쓰기에만 이골이 난 것을 나무랄 수만도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김재수에 비하면 그나마 흠결이 덜 해 보이는 - 결정타가 없었으니 - 조윤선을 굳이 도마 위에 올려놓으려 하는 것은 오직 야당 의원들의 치졸함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논리와 명분보다 얕은 감성에 호소해 정치적 이해만 챙기려는 야당들의 태도는 비리 혐의로 얼룩진 장관 후보자 못지 않게 가증스럽다. 정치 소비자의 한사람으로서 돈 많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미워하게 자극하려는 그들의 행태에 대해 때론 불쾌감을 느낄 때도 있다. 유권자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야당에게 이번 인사 청문회는 전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제대로 공략할 절호의 기회였다. 부실 검증은 이철성 경찰청장에 이어 이번에도 또 드러난 문제였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차피 예고된 부실 검증이었다. 오죽 했으면 여당이 ‘방탄 청문회’라는 비아냥까지 들어가며 미리부터 후보자 방어에 나섰겠는가? 더구나 조윤선은 박근혜가 가장 신임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던가?

여성 정치인인 조윤선이 대통령과 사회적 대화거리가 짧다는 점은 최측근으로서의 훌륭한 조건일 수 있다. 정권 초부터 그와 유사한 소문이 들린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이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묵살한 채 청와대 수석까지 포함해 세 번씩이나 그를 중용하는 것만 보아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이는 곧 조윤선이 야당에게는 현 정권의 인사 난맥상을 지적할 좋은 본보기이자 공략 대상일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청문회를 청문회답게 끌어가는 역할은 어차피 야당의 몫이다. 여당에게 인사청문회에서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이론상 가능할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건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 되더라도 바뀌지 않을 모습이다. 지금이 감성 마케팅 시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값싼 감성의 자극은 곤란하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돈많은 사람에게 돌을 던지라고 선동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부당한 방법으로 돈 버는 일을 막고, 부자에게 더 엄격한 룰을 만드는 일이다.

노력하고 땀 흘리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누구나 부자가 될 희망을 갖도록 만들어주는 것 역시 정치인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중 하나다. 무작정 부자를 혐오부터 하려고 드는 자세는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만 선택한다면 오히려 궁핍에 찌든 사람보다 부자가 정무직 공직자에 더 적격일 수도 있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 했으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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