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사드 대처법이 또 한번 헛발질로 끝났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단순한 헛발질을 넘어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사드 문제에 관한 한 스스로 입지를 더 좁히는 결과를 자초했으니 하는 얘기다. 바둑에서 나름 수(手)를 쓴다고 돌을 놓은게 자신의 집을 메우는 결과로 이어진 것과 똑 같은 이치다.

더 아쉬운 점은 아까운 수를 섣불리 날려버리게 됐다는 사실이다. 사드 배치 장소를 성주군 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수 하나가 적절하지 못한 때에 미리 노출된 탓에 거의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충수를 둔 데다 일수불퇴로 그 수의 효용성마저 사라질 판이니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4일의 청와대 사드 간담회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구경북 출신 새누리당 의원들과 박근혜가 만난 이 자리에서는 사드 배치 장소를 기존 예정지인 성산포대에서 성주군 내 다른 장소로 옮기는 문제가 거론됐다. 말의 전후 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같은 말이 오간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 확인됐다. 박근혜가 성주군 측에서 사드 배치를 위해 새로운 장소를 추천한다면 면밀하게 조사·검토하겠다고 말한 것도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 팩트임이 입증됐다.
      
개인적으로 사드 배치 장소의 군(郡) 내 이전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오던 터였다. 필자 뿐 아니라 드러내놓고 말은 못해도, 그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이라 여겨왔다. 다만, 본의와 달리 성주군민들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오해를 낳기 좋은 방안이라 말을 삼갔을 뿐이었으리라. 성주군민들로부터 그런 제안이 먼저 나오는게 순리라는 인식 역시 이심전심 말을 삼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보아온 대통령의 스타일을 감안할 때 어차피 사드 배치는 현 정권의 임기 안에 강행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행여 정권이 바뀌어 사드 배치가 취소될망정 이미 내려진 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감히 그같은 장담을 내놓게 하는 단서는 지금까지 박근혜가 보여온 정책 관리 스타일이다. 박근혜는 특히 대북 정책을 쓰는데 있어서 찬바람이 불 만큼 단호한 입장을 보여왔다. ‘가슴 시리게’ 부모를 잃어서인지 그의 대북 정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경 일변도로 내달리고 있다. 배수진을 쳤다고 할 만큼 그가 행하는 대북정책들에는 처음부터 퇴로가 없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대통령의 초법적 통치행위였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단적인 예다. 엄청난 후과를 몰고 올, 그 서슬퍼런 결정에 통일부 장관이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외교부까지 앞세워 그 이후 취해지고 있는 북한 고립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무척이나 단순하게 비쳐진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 북한 고립인 듯 보인다. 대통령이든 외교부 장관이든, 밖에서든 안에서든, 외국 지도자나 외교 정책 담당자들을 만나서 하는 일이란게 온통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더욱 철저히 고립시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가히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가동됐던 멸공(滅共) 수준의 대북 정책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같은 강경 일변도 대북 정책의 연장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지점에 현재의 사드 배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북한과 남한이 저마다 더 강한 창과 더 강한 방패를 만들려는 모순된 상황이 연이어 벌어진 결과가 오늘날 사드 논란을 낳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가 철회된다거나 성주군 밖의 다른 장소로 이전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장소 이전이야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 해도, 어떻게 해서든 사드는 배치되고야 말리라 여기는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과정엔 엄청난 소음과 국론 분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 청와대 간담회를 통해 나온 사드 대처법이 일수불퇴 처리되는게 더욱 안타깝게 여겨진다. 그같은 수를 내보인 상대가 하필 새누리당 하고도 대구경북 의원들이었던게 더더욱 뼈아프다. 만약 박근혜가 친박 일색이다시피 한 그들 의원 말고 성주군민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가운데 똑같은 이야기가 오갔더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똑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화를 시빗거리로 삼을 사람은 없었을게 분명하다. 

이번 청와대의 자충수는 대화 상대를 잘못 고른데서 비롯됐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따로 불러 선심쓰듯 선물 배달 심부름을 시킨다는게 오히려 역풍을 자초했다는 해석을 낳기 십상이다. 사달은 행인임발 우개봉하다가 전달할 내용이 먼저 새나가는 바람에 일어난 측면도 있다. 이래저래 대화 상대가 성주군민들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종내 버리지 못하게 하는 정황들이다.  

어차피 배치되고야 말 사드 체계라면, 그리고 성주가 최적의 장소라는 객관적인 근거들이 확보돼 있다면, 박근혜가 이제라도 해야 할 일은 뻔히 정해져 있다. 코드가 맞는 단체장들을 골라 만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성주군민들과 얼굴을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게 순리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무리 없이 성주군 내 사드 재배치 카드를 되살릴 가능성을 이어가는 길이다.

그 다음 야당 의원들을 만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 또한 시급한 과제다. 그런 대처가 안보엔 여야가 따로 없다는 평소의 주장에도 부합한다. 야당 의원들 역시 대화 분위기 조성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사드를 두고 “북한이 도발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식의, 수준 이하의 막말을 하는 행태부터 거둬들이는게 우선이다. 그건 도둑이 남의 집 담장 높이는걸 이유로 패악질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정도의 의식 수준이라면 누구도 그들을 대화 상대로 맞이할 생각이 들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언행을 삼가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사드 배치 진행 과정을 냉정히 복기하고, 여·야·정·청이 다음 수를 함께 고민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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