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누리당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너무나 조용한게 그 이유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평스러운 지도부나, 그런 지도부의 반역사적 무작위를 용인하고 있는 의원들이나 매 한가지다. 저들에게 과연 집단지성이라는게 있기나 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 정도다. 지난 총선 이후 지금까지 새누리당에서는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인치도, 집단지성에 의한 협치도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져오고 있다.     

현재 새누리당의 가장 큰 위기 요인은 여소야대의 정국 현황도, 끝 없이 이어지는 친박의 전횡도 아니다. 정말 중요한 새누리의 위기 요인은 집단지성의 실종이다. 거기에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까지 덧씌워져 있다. 

물론 위기의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요인을 꼽자면 무능하고 안일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망국적 무작위를 가장 앞자리에 놓는게 옳다. ‘망국적’이란 표현을 쓴 것은 비록 몸집은 작아졌지만 새누리당은 엄연히 국정의 한 축을 떠맡고 있는 집권 여당이기 때문이다. 새누리가 바로 서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새누리의 현재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우선 지도부의 행태부터가 한심한 지경이다. 단 한차례만으로도 당의 존립 기반을 뿌리째 흔들 녹취록 폭로가 세 차례나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불관언이다. 취임 후 무엇 하나 혁신의 몸짓을 보인 바 없는 김희옥 위원장은 이번에도 특별한 의지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다. 취임 초 “당명 빼고 다 바꿔야 한다.”던 의기는 말 뿐이었다.

김희옥의 혁신비대위가 했어야 할 일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당명만 남기고 다 바꾸려 들 정도의 결기도 필요치 않았다. 언론에서 그 정도 빌미를 제공했으면 당장 녹취록에 드러난 친박의 공천 개입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기 위한, 당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부터 구성하는게 순서였다. 그리고 위원장의 엄명으로 김성회 전 의원에게 가해진 친박들의 부당한 압력, 나아가 다른 의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가해졌을지 모를 압박을 있는 대로 들춰내는게 우선이었다. 검찰 고발은 그 다음의 일이다.

동시에 김성회를 부패방지법상 내부 고발자로 분류하고, 차후에라도 그에게 일체의 보복이 가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켰어야 했다. 그 같은 조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인 김희옥에겐 더더욱 어울렸을 법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처럼 김희옥의 처신에 맺고 끊음이 있었더라면, 서청원 의원의 입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적반하장식 으름장 발언이 나오는 추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김성회의 폭로 배경을 따지고 드는 것은 친박들의 아전인수식 논리에 장단을 맞춰주는 일일 뿐이다. 그 같은 논리는 혁신을 거부하는 집단 이기주의자들이 내부 고발자를 따돌릴 때 흔히 내세우는 빌미이자 수단이다. 내부 고발을 치졸한 고자질로 취급하는 것 역시 그들 집단 이기주의자들의 구태 유형 중 하나다. 

잠시 새누리당 이야기를 4년 반 쯤 전으로 되돌려보자. 2011년 10·26재보궐선거 직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은 ‘디도스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다. 해당 사건은 선거 당일 일부 인사들이 디도스 공격으로 선거관리위원회 및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를 한동안 먹통으로 만든 사건이었다.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찾지 못하게 해 투표율을 떨어뜨림으로써 박원순 후보를 낙선시키고 여당의 나경원 후보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려는게 그 목적이었다. 이 사건에 한나라당 최구식 당시 의원의 비서가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자 여당은 곤경에 빠졌다. 그로 인해 최구식, 나아가 한나라당이 디도스 공격에 개입했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당은 둘째 치고 최구식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증거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끊이지 않자 그 해 말 출범한 박근혜 휘하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최구식을 당에서 방출하는 결단을 내렸다. 권고에 의한 탈당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출당이나 마찬가지였다. 훗날 최구식은 특별검사에 의해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된다.

최구식 방출은 그야말로 읍참마속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결단과 결기에 의한 혁신 몸짓이 있었기에 이름까지 바꾼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권 말기에 봇물 터지듯 불거져나온 대통령 친인척 비리와 디도스 사건 파문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그 결과는 2012년 4·11총선에서의 과반 의석(152석) 달성으로 나타났다.

혁신을 위한 결단이 큰 결실로 이어진 사례는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대 총선 직전 이렇다 할 혐의도 없이 단지 친노의 상징적 존재라는 죄목으로 인해 공천에서 탈락한 이해찬 의원과 유인태 전 의원 등이 좋은 참고 사례다. 그들은 공천권을 쥐고 흔들며 망나니 칼춤을 춘 적도, 지역구를 옮기라고 비노(非盧)를 윽박지른 적도 없지만 단지 친노라는 죄목으로 인해 희생양이 됐다. 그리고 친노 패권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단행된 그들의 배제는 분명 더민주가 4·13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제1당으로 부상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지금 새누리가 처한 상황은 4년 반 전의 박근혜 비대위 때보다도, 4·13총선 직전의 더민주보다도 더 엄중하다. 당은 여소야대의 굴레에 갇힌데다, 계파 갈등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다. 그런 와중에도 더민주의 친노 패권보다 실체가 뚜렷한 친박 패권의 전횡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게다가 향후 당을 단합으로 이끌 리더십의 윤곽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 같은 현실 속에서 새누리가 당장 기댈 언덕은 혁신비대위 뿐이다. 혁신비대위가 선무당 사람 잡듯 해서라도 새 지도부 출범 전에 혁신의 기본 틀과 기풍을 세우는게 새누리의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새누리 혁신비대위는 여전히 천하태평이다. 김희옥은 녹취록 파문의 처리를 조만간 새롭게 출범할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맡기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사안은 그 무게나 폭발성으로 보아 당 지도부 회의에서 다루는게 마땅하다. 평시의 최고위원회의였을지라도 그러할진대, 더구나 지금은 혁신위와 비상대책위를 합친 혁신비대위가 지도부를 대신하고 있는 마당이 아닌가.

혁신비대위가 이런 일조차 모른 체하고 넘어간다면 의원들이라도 현재의 비상 지도부를 향해 존재 이유를 엄중히 묻는게 상식적이다. 오늘날 새누리당의 진짜 위기는 초선 모임이든, 초재선 모임이든, 중진모임이든, 그 어디에서도 그 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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