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민간 부문의 정규직 전환 조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12일 취임 후 첫 민생 행보로 공사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올해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포함해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미래창조과학부가 25개 출연연구소 비정규직 연구원(3700여명)의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고,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3만명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민간에서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SK그룹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는 오는 6월 하청업체 직원 5200여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롯데그룹은 향후 3년 간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새 정부 출범 이후 20일도 안돼 정규직 전환 계획 규모만 7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SK브로드밴드의 조치는 대기업 중 처음이어서 공항공사에서 촉발된 비정규직 제로(0)정책이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SK의 경우 하청업체 직원까지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는 파격적인 고용모델을 제시함으로써 다른 대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규직 전환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단지 신분 상의 이유로 임금 차별을 받는 바람에 ‘사회 양극화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하지만 복잡한 단계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제로정책’이라는 말로 포장되면서 혼선이 빚어질 조짐도 일부 보인다. 우선 이들이 기존 정규직과 똑같은 처우와 급여를 받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당근과 채찍이 함께 가야 한다.”며 부담금을 매기겠다고 공언한 것도 우려스럽다. 기업들에게는 흘려듣기 어려운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밀어붙이기’식의 정규직화나 채용 확대는 심각한 부작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추가경정예산 10조원으로 하반기에 공공부문에서 1만 2000명을 추가 채용하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안에 8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지만 정권이 교체되면 언제든 흐지부지될 수 있는 일회성 정책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정규직 채용 후 퇴직까지 길게는 30여년 간의 인건비가 고스란히 기업 부담으로 남게 된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위기에 처한 노동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간과해선 안 된다. 서비스 산업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등장이나 제조업의 로봇 대체 등 노동력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등의 환경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KTX와 고속버스 스마트폰 예매시스템 도입이나 패스트푸드점의 주문 애플리케이션 등장 등으로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일본 내 601개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49%가 10∼20년 뒤 인공지능(AI)이나 로봇으로 대체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 확대는 고용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하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용정책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기업들의 혼선이 가중된다는 점도 되새겨봐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고용정책이라도 지속 가능성과 현실성을 갖춰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경영여건과 시장상황을 고려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도덕성이나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정규직의 양보를 끌어내는 사회적 대타협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정규직 전환의 실효성이 뒤따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비용을 보충하는 과정에서 신규 고용의 감소, 서비스나 상품의 가격 인상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전체의 3분의1 정도만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공공기관이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 국민 세금이 투입될 가능성도 크다.

정규직 전환이 새 정권 출범에 대한 화답용이어서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다른 영역으로 비용 전가를 하려 한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대증요법은 오래 갈 수 없다. 장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비정규직 ‘제로’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다양한 각도에서 살피고 접근해야 한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