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원자력발전 반대 운동’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과 무소속 의원 28명이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한 데 이어 ‘제2의 자원외교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며 원전 수출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한국전력이 추진 중인, 영국 무어사이드 지역에 건설될 사업비 150억 파운드(약 21조 4000억원) 규모의 원전 3기 건설 사업 수주를 정조준한 것이다.

대선 유력 주자들도 원전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원전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신규 건설을 중단하겠다며 40년 뒤에는 ‘원전 제로(0) 국가’로 만들겠다는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신 고리원전 7·8호기의 추가 건설을 반대하며 건설 중인  5·6호기도 차기 정부에서 존속 여부를 다시 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공약대로라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기존 원전정책을 180도 바꾸려 할 공산이 크다.

정치권의 주장대로 원전을 포기한다면 대체할 수단은 있는가. 정치권은 원전 대안으로 가스 발전과 신재생발전 확대를 주장한다. 그러나 가스 발전과 신재생에너지는 이른 시일 내에 원전과 석탄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가스 발전은 비용이 많이 들면서 이산화탄소를 적지 않게 발생시키고,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은 가용 토지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낮은 발전 용량과 높은 가격 때문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날씨 변화에 따른 불안정한 전력 공급 탓에 백업 전원을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 문제점도 있다. 가스복합 화력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국내 산업용 가스요금 때문에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다.

물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원전 공포가 커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과 영국, 프랑스, 인도, 러시아, 미국은 원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원전 제로를 선언했던 일본은 끝내 전력공급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재가동에 나섰다. 54기의 원전이 올스톱되자 가스발전용 LNG 수입이 급증해 2011년 무역수지가 31년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적자 규모도 2013년엔 1000억 달러(약 114조원) 이상 확대됐다. 연료비 부담 가중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전원 구성 변화에 따라 전기요금도 대폭 인상됐다. 전기요금 상승은 가계부담 및 기업의 생산비 증가로 이어져 국가 경쟁력 하락을 초래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전력소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OECD 회원국의 전체 전력 생산량이 1990년 평균 7629테라와트아워(TWh)에서 2013년 1만 796TWh로 4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량은 105TWh에서 538TWh로 무려 410.5% 급증했다. OECD 회원국 전체 증가율의 무려 10배에 이른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발전원별 전력 비중은 원자력이 32.3%로 석탄(39.4%) 다음으로 많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을 폐기하면 당장 우리나라의 전력수급량을 감당할 만한 대체 방안이 없는 셈이다.

원전산업은 수출과 고용 측면에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원전 수출의 효과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사례에서 확인된다. 2009년 수주한 UAE 바라카 원전은 건설 수주액이 186억 달러였고, 60년간 맺은 발전소 위탁운영 계약의 예상 매출은 494억 달러다. 위탁운영을 통한 매출이 자동차 228만대, 휴대폰 520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

이번 영국 원전은 이보다 규모도 더 크다. 수주에 성공하면 수많은 협력 중소기업들도 엄청난 기회를 맞을 수 있다. UAE 원전 수출에는 80여개 중소·중견 협력업체가 참여했다. 최근 국내 처음으로 한국형 신형가압경수로(APR 1400)가 적용돼 가동 중인 신고리 3호기를 벤치마킹하려 외국 정부·기업 관계자의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정치권이 충분한 검토도 없이 섣불리 원전 포기를 결정할 경우 어렵게 확보한 원전산업 경쟁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선까지 겹쳐 국가경제 사정이 가뜩이나 어렵다.  ‘이상’도 좋지만 ‘현실’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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