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지난 15일부터 한국관광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롯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 제공 결정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가 본격화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루만에 7만명이 제주 방문을 취소하는 등 3월 들어 한국관광을 취소한 중국인 선박 관광객이 50만명을 넘어섰다. 중국 관광객 의존도가 높은 제주도에서는 크루즈 관광객의 하선 거부에 이어 예약 취소가 잇따르는 바람에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생활 터전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베이징을 연상시킬 만큼 중국인들로 왁자지껄했던 서울 명동 거리도 그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매우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내 한국 기업들도 내상이 깊어지고 있다. 롯데마트의 중국 매장 112개 중 상하이(上海) 화둥(華東)법인 점포 51개를 포함해 57개가 영업정지를 당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른 한국 기업들도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 사드 후폭풍으로 성장률이 1%포인트나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이후 중국과의 관계악화에 대한 우려에도 아랑곳 없이 낙관론만 펼쳐왔다. 당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중국으로부터 큰 보복성의 조치는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도 “중국의 사드 보복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 언론에서 경제 제재,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말까지도 “(중국 보복을) 공식적으로 볼 정도로 오진 않았다는 점에서 과대 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의 보복 조치가 본격화, 가시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공개적으로 먼저 거론해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후에 정부의 대응 태도로 봤을 때 고위 당국자들의 인식이 너무 안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한국관광상품 판매금지 조치는 중국 관광당국인 국가여유국의 지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사드 배치와 관계 없는 민간 기업들을 상대로 한 중국의 전방위적이고 무차별적인 보복은 너무 터무니 없고 폭력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다보스포럼에서 자유무역을 역설했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말을 참으로 공허하게 만들어버렸다.

이 조치로 여행사를 통한 한국관광 고객 모집은 전면 금지됐다. 한국에 오려는 중국인들은 개인이 직접 비자를 발급받고 항공권을 구입해야 한다. 중국 관광객은 급감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어려운 호텔·면세점·항공 등 업계의 피해는 급속히 확산될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은 버틸 ‘체력’이라도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계약 파기, 통관 지연 등으로 쓰러지는 곳이 속출할 게 뻔하다.

상황이 이런 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하다 못해 참담한 지경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중국의 보복 조치가 가시화된 이후 지금까지 “검토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외교부는 중국의 한국 관광상품 판매금지 조치가 보도된 지 하루가 지나서야 짧은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보도에 대해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며, 사실일 경우 유감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대응 방안도 7개월 째 이어져오고 있는 ‘검토 중’이라는 입장의 되풀이였다.

유 부총리는 며칠 전 “중국이 사드 배치에 반발해 경제적인 보복을 가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 공식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했다. 기업들이 아우성치고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곡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는 마당에 경제수장이라는 사람이 할 소리인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남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 충돌 과정에서 중국이 일본에 가한 전방위 경제보복 조치를 기억한다면 감히 할 수 없는 얘기다. 그 동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다가 지금 와서 대응할 게 없다는 것은 무능과 무책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기업들은 보복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외풍을 막아주고 위험을 없애주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사드 보복이 거세진 데는 기업들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탓도 물론 있지만 수출 구조 및 산업 다변화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정부 책임이 더 크다. 정부가 세금을 걷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대응으로 사드 보복에 대한 방패막이나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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