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물가의 상승세가 무섭다. 통계청이 내놓은 ‘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아우성이 공연한 엄살이 아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2% 올랐다. 2012년 10월(2.1%)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지난해 9월부터 5개월 연속 1% 이상씩 올랐다. 식품 등 서민물가는 전년보다 2.4% 오르며 2012년 2월(2.5%)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반면 통계청 가계수지 통계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지난해 3분기 월평균 소득은 1년 전에 비해 0.65% 증가에 그쳤다. 이 정도면 그래도 물가 안정세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딴판이다.

농·축·수산물 가격이 1년 새 8.5% 오르며 전체 평균을 4배 이상 웃돌았다. 설날을 끼고 수요가 늘어난 당근(125.3%), 무(113.0%), 배추(78.8%) 등 채소값의 오름 폭이 가장 가파르다.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달걀값도 61.9% 뛰었다.‘장바구니 물가’로 불리는 신선식품지수는 전 달에 이어 무려 12.0% 치솟았다. 소주와 라면, 빙과류, 과자 등의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업체들이 앞장서면 이보다 낮은 업체들이 뒤따라가는 식으로 가격인상 대열에 가세한 까닭이다. 여기에다 외식비와 영화 관람료 등 서비스요금도 덩달아 뛰고 대중교통 운임, 지자체의 상하수도료, 쓰레기봉투 등의 공공요금도 올랐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석유류 가격도 8.4% 올라 서민 가계의 주름살을 늘렸다.

정부는 최근의 물가 상승이 지난해 저유가에 따른 ‘기저 효과’(Base Effect)와 AI 여파 등 공급 측면의 일시적 요인 때문이어서 상승세가 곧 진정될 것으로 내다본다. 경기회복으로 수요가 늘어나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닌 만큼 인플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론적으로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가계소득이 정체된 가운데 물가만 급등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서민들은 그동안 생산 투자 취업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정체되거나 부진한 와중에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을 위안거리로 삼아 왔다. 지금의 추세라면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물가 상승세가 경기 활성화에 따른 수요확대 요인이 아니라 유가와 농산물 등 공급 요인 탓인 만큼 질적인 측면에서도 나쁘다. 정부의 주장처럼 물가가 안정세를 곧 되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찾기 어렵다. 조선업 등 불황이 계속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는 데다 김영란법 영향 등으로 자영업자와 종업원들도 퇴출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로 서민들이 돈을 빌려 쓰는 환경도 악화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뛰는 담보대출금리는 내년초 연 4%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대치인 1300조원으로 넘어선 상황에서 소득부진과 물가상승이 이어질 경우 민간소비 위축은 불가피하다. 이는 다시 투자부진, 일자리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저소득층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릴 것은 불문가지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표방에 따른 세계경제 위축 가능성 등으로 당분간 수출주도형인 한국 경제에 하방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물가 안정은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식물 정부나 다름 없다는 변명은 늘어놓지 말기 바란다. 어설픈 초동대응으로 AI를 사상 최악으로 키운 것만도 울화가 치미는데 서민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물가지표의 착시현상에 속아 지자체들이 공공요금을 앞다퉈 올려도 중앙정부는 방관하고 부추긴다는 말이 나오는 대목에선 아연할 따름이다. 탄핵 정국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 정국으로 이어져 한동안 사회 혼란이 지속될 게 뻔한 마당에 더 이상 손 놓고 있다간 ‘물가 폭탄’을 맞기 십상이다.

경제 사령탑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물가를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하고, 사재기나 생필품 유통구조 개선 등을 통해 중간 마진을 줄이는 등 정부는 가능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해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서민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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