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자금대출 제한 정책이 새롭게 조정된다. ‘제한’에 방점이 찍힌 채 섣불리 공개됐던 정책 개선 방안이 격렬한 반발에 부딪히자 당국이 일보후퇴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개선안은 전세자금대출 명목으로 싼 이자(3%대 초반)에 은행돈을 빌린 뒤 이를 부동산 투기에 악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심지어 이같은 방식의 투기 행렬에 다주택자들도 끼어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개선 방향은 전세자금대출로 받은 돈이 부동산 투기자금으로 흘러들지 못하게 한다는 쪽에 맞춰져 있었다. 개선안은 동시에 서민 대출이라는 기본 취지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주택금융공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 SGI서울보증의 전세보증과 확정일자만 있으면 다주택자들을 포함한 누구라도 은행에서 저리의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개선안의 큰 줄거리는 원칙적으로 부부합산 연간 소득이 7000만원 이하인 가구와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에 한해 전세자금대출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이중 2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전세자금대출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은 별다른 반발을 부르지 않았다. 문제가 된 것은 소득 기준의 강화였다.

부부합산 소득 7000만원 이하 가구에게서 전세자금대출 기회를 박탈하면 기준선을 갓 넘는 가구, 특히 무주택 가구의 경우 졸지에 월세살이로 전락하기 쉽다. 연 7000만원에서 100만원 모자라는 이들은 혜택을 누리고, 7100만원을 버는 가구는 주거 불안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불합리하다는 주장도 터져나왔다.

맞벌이 부부의 7000만원 소득을 과연 고소득이라 할 수 있느냐며 소득 기준에 대해 원론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발이 커지자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지난 30일 반발을 무마하는 내용이 담긴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주 내용은 무주택자에 한해서는 소득 기준을 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월세살이 전락’ 우려를 가장 먼저 해소하기 위함인 듯 보였다.

금융위는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무주택 가구에 대해서는 전세자금대출을 받는데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1주택자에 대해서는 소득 기준을 따로 정할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금융위는 이와 관련, “관계부처와 협의해 조만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한 뒤 이를 확정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1주택자에 대해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짐작하기 어렵다. 향후 여론의 향배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 안에서는 1주택자도 소득과 무관하게 전세자금대출을 받게 하는 방안이 규제안과 함께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1주택자 모두에게 동일한 룰이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예를 들어 1주택자이지만 다른 지역으로 인사발령이 나 어쩔 수 없이 타지에서 전셋집을 얻어야 할 경우 등에 한해 대출을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하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1주택자 가구는 원칙적으로 전세자금대출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향후 구체적 방침이 결정되면 정부의 전세자금대출 제한은 보증제도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정부는 바뀐 정책에 따라 주택금융공사 등을 통해 특정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만 전세보증을 제공하도록 조치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현재 이들 기관의 전세보증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전세자금대출을 해주고 있다. 보증범위는 80%선이다. 은행으로서는 나머지 20%에 대한 리스크만 떠안은 채 비교적 안전하게 대출영업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같은 현실 탓에 주택금융공사 등의 보증보험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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