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3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고강도 처방을 담은 ‘주택시장 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벌써 여덟번째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다.

보름 전 ‘8·27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은 물론 광명·하남·구리 등 수도권 지역에서도 집값이 광란의 급등세를 탔다. 자고 일어나면 호가가 1억원씩 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투기와 거품 논란을 넘어 서민들이 절망감에 빠져 사회문제로 비화할 태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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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게 절박하다 보니 당·정·청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책은 부동산 관련 부처와 청와대, 여당이 함께 집값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범정권 차원에서 내놓은 종합처방전인 셈이다.  

 이번 주택시장 안정 방안은 보유세 강화와 대출 규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강도 높은 수요 억제책에 방점이 찍혔다. 서울·세종시 전역과 부산·경기 일부 등 집값이 급등한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3.2%로 올리는 등 다주택자와 고가주택을 겨냥한 종부세 강화가 핵심이다. 종부세를 도입한 참여정부의 3%보다 더 높다. 전년 대비 종부세 부담 증가율의 상한선도 150%에서 300%로 2배나 올렸다. 전년도에 1000만원을 낸 사람이 이듬해엔 3000만원까지 부담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주택보유자의 규제 지역 내 신규 주택담보대출 금지, 임대사업자 대출 담보인정비율(LTV) 40% 신규 적용 등 대출 규제의 고삐도 한층 강하게 죄었다. 부부 합산 2주택 이상인 가계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에 대한 보증도 금지하는 등 ‘갭 투자’ 가능성도 차단했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와 종부세 경감 혜택도 축소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다주택자 투기 수요를 철저히 차단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집값 안정에 실패한 노무현 정부의 대책과 판박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로 집값이 급등하자 노무현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2006년 서울 부동산 가격은 20% 이상 폭등했다.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집값만은 잡겠다”며 17차례의 규제폭탄을 퍼부어댔지만 노무현 정부 5년간 집값은 56%나 치솟았고, 서울과 지방 간 양극화를 불렀다.

참여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은 오히려 시중 유동성 자금을 부동산 시장에 머물도록 하는 바람에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정부의 누르는 힘만큼 서울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규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은 불타는 주택시장을 잡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참여정부가 남긴 교훈이다. 요즘의 부동산 시장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기와 일자리를 이유로 규제 고삐를 늦추자 부동산 값이 치솟았다. 정부가 이를 잡기 위해 잇따라 규제책을 내놓았지만 이에 미치지 못한다. KB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서울 부동산 가격은 올들어 8월까지 6.9% 상승했다. 2006년 이후 최대 상승률로 이미 전년의 연간 상승률(5.3%) 수준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정부가 집값 상승을 ‘투기꾼의 농간’만으로 판단하는 게 집값 안정 정책 실패의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 안정보다는 규제를 통해 찍어누르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규제 폭탄은 일시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집값을 잡으려면 규제 일변도의 정책 기조를 지속 가능한 근본대책에 초점을 맞춰 바꿔야 한다. 세금 올리고 대출을 조이는 식의 부동산 대책은 너무 많이 써먹은 까닭에 시장에는 내성이 생겼다. 이번 대책이 단기적으로는 약발이 먹히지만 장기적으로 한계를 지닌다는 견해가 적지 않은 이유다.

 최근의 아파트 값 급등은 서울 강남 수준의 ‘좋은 환경을 갖춘 주택’ 수요가 공급보다 더 많은 것이 주요인이다. 그런 만큼 서울 강북이나 수도권 지역에 강남 수준의 교육·교통·생활편의 시설을 갖춘 권역을 개발하는 데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시장에 ‘좋은 주택’이 계속 공급된다는 신호를 줘야 시장은 안정세로 돌아설 것이다. 정부는 수도권에 신규 공공택지를 개발한다는 내용의 계획도 곧 발표한다. 공급대책이 서울 외곽에 임대아파트를 많이 짓는 데 집중될 가능성이 큰데, 이런 방법으로는 역부족이다. 집값 급등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더 정확하고 더 많은 공급 대책이 나와야 한다.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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