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 공격을 통해 가치논쟁을 촉발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또 하나의 담론 거리를 제시했다. 이번엔 ‘국민성장’이 그가 내민 카드다. 그가 한국당의 경제정책으로 제시한 국민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실패로 끝났다는 전제 하에 채택된 개념인 듯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 국민성장일까? 언뜻 모호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지만 곰곰 되짚어보면 네이밍이 절묘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장차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큰 소득주도성장론과 국가주의를 싸잡아 공격할 수 있는 다용도 무기로 효용을 발휘할 수 있겠다 싶어서이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우선 국민성장의 ‘국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국가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어다.

김병준은 한국당 비대위장 취임 이후 줄기차게 현 정부의 정책을 국가주의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가 말하는 국가주의는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시민생활에 관여하는 현상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대변한다.

예를 들면 국가가 일자리도 직접 만들고, 민간 기업이 최저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안 되면 지원금을 주고, 사립대학의 입학과 운영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등의 행위 하나하나가 김병준의 눈엔 국가주의로 비쳐졌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나타난 국가주의적 행적은 위에 언급한 것 외에도 수두룩하다. 영어 좀 못해도 주요국 대사로 내보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가 부질없이 전면에 나선 다음 공부 좀 못해도 서울대 가게 하고, 스펙이 좀 떨어져도 일류 직장에 들어가게 하려는 행위 등은 자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김병준의 국가주의는 행정학자들이 말하는 공동체주의나 집단주의, 또는 전체주의와는 결이 다른 개념이다. 국가주의는 담론을 즐기는 학자 출신답게 김병준이 현 정부의 정책을 구조화하기 위해 캐낸 용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의 반대 개념인 공동체주의와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김병준이 비판하는 국가주의는 어느 면에선 진보정권이 숙명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통치철학인지 모른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사회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경쟁만 강조하기보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게 정답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진보의 가치를 추구하는 현 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것 역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자율과 경쟁에 맡겨두기보다 만기친람식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이것저것 관여하는 것이 많다 보니 백악관보다 훨씬 많다는 청와대의 직원 수가 지금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통치철학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이다.

국가주의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경우에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공동체의 지지까지 확보할 때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게 열린다.

일례로 싱가포르가 리콴유(李光耀) 총리 시절 영어를 교육언어로 채택해 모든 학교에서 영어만 사용하도록 강제한 정책은 국가주의의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독재자의 그같은 국가주의 정책 덕분에 싱가포르의 글로벌 경쟁력은 크게 향상됐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정부의 국가주의적 정책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따져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우리 현실은 불안정하다.

싱가포르의 사례를 거꾸로 풀어보면 불안정이 초래된 이유는 자명해진다. 국가공동체의 이익보다 코드가 맞는 내집단(內集團·In-group)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공동체의 지지보다 자기들끼리의 환호와 갈채만 확보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편파적 국정운영이 그 이유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선은 내집단 우선의 국정운영을 보여주는 여러 사례중 하나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대 교수 시절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주장한 논리대로라면 열번도 더 자진사퇴해야 할 인물이 유은혜다. 그런 인물이 다른 부처도 아니고 교육부의 수장감으로 인선됐다는 자체만 가지고도 그들끼리의 내집단 우선주의가 얼마나 심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그 많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후보자를 두둔하는 지경이라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운용보다 더 악랄하다고 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 운용이 쉬쉬해가며 한 짓이라면, 현 정부의 내집단 우선은 드러내놓고 하는 악행이기에 하는 말이다.

국민성장론이 겨누는 또 하나의 타깃인 소득주도성장 역시 내집단 우선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국가공동체 안의 내집단과 외집단 간 조화를 무시하고 합리적 분배를 위해 깊이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채택한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인 탓이다.

국민성장론은 자율과 경쟁, 성장에 우선순위를 둔 채 정부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심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수권정당으로서의 상징적 경제정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그 정도 단계까지 진화했다고 평가하기엔 어딘지 어설프고 구체성도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성장론은 국가주의의 폐단과 문제투성이인 소득주도성장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인 듯 보인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성장 담론이 치열하게 전개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김병준이 촉발시킨 새로운 가치논쟁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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