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으로 지수가 하락중인데, 그 실체에 대한 컨센서스(통합된 의견)마저 형성돼 있지 않다.”

우리 증시 상황에 대한 한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그의 말에선 실체조차 파악할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밀려드는 공포감이 느껴진다.

증시가 패닉 상태에 빠진 듯 보인다. 그간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져온 코스피 2000선이 무너진 날 시장은 사실상 혼돈 양상을 보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운데). [사진 = 연합뉴스]

22개월만에 2000선이 무너진 지난 29일 하루에만 우리 증시에선 시가총액 31조원이 증발했다. 이달 들어 증발된 액수를 모두 합치면 그 규모가 293조원에 이른다.

증시에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분의2 정도가 한달도 못되는 사이 증발한데다, 그 속도마저 빨라진다고 느낀 투자자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더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합된 진단마저 없다면 두려움의 크기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표면적인 이유는 드러나 있다. 원인은 외국인들의 시장 이탈이다. 29일 하루만 해도 외국인들은 1606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들이 ‘팔자’에 나선 것만 벌써 8일째였다.

이들의 움직임은 시장에 불안감을 확산시켰고 겁먹은 개인들이 가세하면서 그래도 믿었던 심리적 저지선이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연기금의 소극적 처신 등으로 인해 기관도 불안감을 확산하는데 한몫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로 인해 “외국인이 매도하는 주식을 받아줄 주체가 없다”는 푸념조의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그같은 인식은 금융위원회도 공유하고 있었다. 29일 오전 증시 개장을 앞두고 다급하게 열린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럴 때일수록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에 비해 실탄이 넉넉하고 분석 능력까지 갖춘 기관이 방어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외국 자본의 이탈을 자극한 요소가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하방 위험성이 구체화되고 있는 현실이 기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하방 위험성 증대는 성장률, 투자, 고용 등과 관련된 각종 지표가 다같이 말해주고 있다.

주가 흐름이 심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은 증시에 치명타로 작용한다. 외국인이나 기관, 개인 가릴 것 없이 주식 투자는 미래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 시장만 더 심각한가?”라고 물을 땐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불안감을 가져다주는 실체에 대한 컨센서스마저 형성돼 있지 않다는 낭패스러운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주식 시장의 관심사는 주가가 어디까지 떨어질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즉, 코스피 2000선마저 무너진 지금 새로운 심리적 저지선은 어디쯤일까 하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1900선을 새로운 저지선으로 보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코스피 지수가 여기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 의미가 통한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증권사로부터 신용융자를 받아 주식투자에 나선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개인들이 투매를 종료할 때까지는 주가 하락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 당국은 여전히 팔짱만 낀 채 이렇다 할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하다 못해 메시지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불만들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정부가 나서기엔 이미 ‘골든 타임’이 지났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의 아우성에 비하면 정부의 대응은 한가롭기까지 하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회의 종합국정감사에 나온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현재의 주식 시장 상황에 대해 “패닉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증시 현황을 두고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정부가 주식 시장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과 함께였다.

그러면서 그는 “컨틴전시 플랜을 갖고 있으니 상황을 보겠다”, “아주 면밀히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 정부가 구체적 행동에 나설 단계는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발언 내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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