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북한이 국가냐 아니냐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논란은 얼마 못 가 급속도로 진정됐다. 첨예하게 맞섰던 청와대와 자유한국당 모두 논란이 길어져봐야 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해 얼른 결기를 누그러뜨린데 따른 결과인 듯 보인다.

사실 이번 논란의 주제는 청와대나 한국당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란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의 발언은 우선 발설한 쪽이 정신을 차린 다음 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던, 명백한 실언이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사진 = 연합뉴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사진 = 연합뉴스]

적통 보수를 표방하는 한국당도 난감하고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헌법 조항을 들먹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 비준에 반대하다 보니, 다시 말해 국회 비준 사안임을 주장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북한을 앞장서서 국가로 인정하는 꼴이 돼버렸다. 한국당 역시 어성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불현듯 ‘어,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꼬리를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판단하건대, 양측 모두 앞뒤 가리지 않고 적진을 향해 ‘공격 앞으로’만 외치다가 벌어진 해프닝 한마당이었다.

서슬 퍼렇던 시절엔 북한이 국가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림없는 일이었다. 목숨이 두 개쯤 되지 않고서는 그같은 주제를 입에 올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반공’이란 말로도 모자라 ‘멸공’이란 말이 풍미하던 시절에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시절 집권했던 보수세력의 맥을 이어온 한국당이 북한을 국가로 드러내놓고 인정한 꼴이 됐으니, 그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어색함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만약 이번과 반대로 청와대가 ‘북한은 국가다’라고 말했다면 헌법을 들먹이며 두고두고 싸움을 이어갔을 한국당이니 하는 말이다. 물론 홍준표 전 대표처럼 한국당 내에서도 북한을 ‘왕조세습 국가’로 칭하며 명목상 국가로 인정한다는 사람이 또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일과 관련해 굳이 난감함의 정도를 따지고 들자면 청와대가 더 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변인의 말은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 흔들다 보니 불현듯 튀어나온 실언이었을 뿐, 그 반대의 주장이 훨씬 더 진보의 취향에 맞을 법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진짜 당혹감은 대변인의 실언이 두고두고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뒤늦은 자각에서 비롯됐을 성싶다. 우선은 북한 쪽을 화나게 함으로써 그간 공들여 일궈놓은 남북관계가 훼손될 위험성을 퍼뜩 깨달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변인의 말대로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향후 모든 남북 협상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이란 이름이 명기된 합의서가 작성돼야 한다고 주장해도 청와대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된다.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남조선’이 서류상 나란히 병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져들게 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국가도 아니라면서 향후 북한과 맺어질 각종 합의에 대한 국회 비준 요청은 무슨 명분으로 할 것이며, 앞서 판문점선언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를 요청한 일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치가 이러니 청와대로서는 잘못 내뱉은 말을 무리하게 고수하다간 더 큰 낭패를 만날 수도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헌법상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까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사람 누구도 북한 사람을 ‘북한 국민’이라, 휴전선을 ‘국경선’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구나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 절제하고 그 둘을 현명하게 아우르면서 북한을 바라보고 상대해왔다.

현 정부의 청와대가 첫 번째 남북정상회담 직전부터 국내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할 때 김정은의 직함을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통일한 것도 그같은 유의 절제와 조화의 산물이었다. 그들과 만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임을 인정하되, 우리끼리 이야기할 땐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칭하겠다는 뜻이었다.

북한은 우리 헌법상 국가가 아니지만 국제법적으로는 엄연히 국가 대접을 받는 존재다. 오래 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하면서부터 사실상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국가 대접을 받아왔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실이 그러하니 현실적으로 국가 대접을 하지 않고선 한발짝도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이 북한이다.

홍준표 전 대표의 주장마따나 우리 헌법이 국제사회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북한 문제를 둘러싼 인지적 혼란의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헌법을 지지할 근거도 나름 충분하다고 본다. 현행 헌법엔 통일을 향한 민족적 의지와 당위라는 법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이다. 실질적 법치주의 관점에서 지금처럼 헌법 정신의 가치를 살리는 쪽으로 대북 정책을 펼쳐간다면 현행 헌법 하에서도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북한이란 공동체의 지위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논란 자체가 주는 실익이 전혀 없다는 자각을 진보와 보수 양진영 모두에게 심어주었다는 얘기다. 어차피 한번은 걸러야 할 과정을 덜 민감한 시기에, 비교적 가벼운 사안을 계기로 거쳐가게 된 점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북한은 국가인가’라는 의제는 공론화되는 순간 해답도 없이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딜레마로 다가설 수밖에 없다. 예민한 문제일수록 말보다 이심전심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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