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개월여 만에 다시 일자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내년 5월 초까지 5만9000개의 단기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부처별로 산하 공기업·공공기관을 총동원해 단기 임시직을 채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굉장히 절박한 마음으로 평상시 꺼리는 정책수단도 동원했다”고 강조했을 만큼 일자리를 반드시 늘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그런데 정부가 밝힌 5만9000개의 단기 일자리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는 일 없이 ‘체험’만 하면 월 150만원 정도 주는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 5300명과 행정업무 보조 2300명을 채용한다. 대학 강의실 전등 끄는 게 전부인 국립대 ‘에너지절약 도우미’ 1000명, 독거노인 전수조사원 2500명, 전통시장 환경미화원 1600명, 화재 감시원 1500명도 뽑는다. 더군다나 산재보험 가입 안내나 외국인 불법고용 계도, 소상공인 결제수단 홍보, 농한기 농촌 환경정비 분야 등의 채용 계획도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하나같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단기 관급 일자리다. 유례없는 고용대란을 막기 위해 국민들의 혈세로 단기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다. 일자리 숫자를 끌어올리기 위해 세금을 살포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고용지표 악화를 감추고 통계상 일자리 숫자를 늘리고 불리겠다는 복안이다. 이것이야말로 공공부문이 비정규직 양산에 앞장서는 것으로,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0)’ 선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아닌가.

물론 우리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진 가운데 고용 감소가 더욱 두드러질 겨울을 앞두고 정부가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재정을 풀어서라도 취약계층 일자리 확충에 나서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업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2~3개월짜리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정부의 고용 해법이 돼서는 안 된다. 고용이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늘어야 소비가 늘어 경제성장의 선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요즘의 고용시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본격화한 1998년에나 볼 수 있는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이다. 예년에 전년 대비 30만명씩 늘어나던 취업자수 증가는 7월 이후 5000명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9월 4만5000명 ‘반짝’ 증가한 것도 공공행정·사회보장·보건·사회복지 등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억지로 늘린 덕일 것이다. 한동안 취업률 100%를 기록하던 특성화고에서도 ‘취업 절벽’ 사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특성화고의 취업률은 올해 65%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9월 ‘나홀로’ 자영업자가 11만7000명이나 줄어들고 실업자는 9개월째 100만명을 넘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고용대란은 ‘반시장’ 정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을 턱없이 올려 기업과 소상공인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각종 규제로 기업 투자를 가로막은 결과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미봉책으로는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때문에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 전력투구해도 일자리가 왜 늘어나지 않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정부도 모를 리 없다. 그 원인은 정부주도형 일자리 정책에 있다. 일자리, 특히 좋은 일자리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만든다. 고용의 주체가 민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일자리정책은 공공부문 위주로 짜여 있다.

일자리정책을 민간주도형으로 바꿔야 한다. 민간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있다면 과감하게 없애고 투자를 방해하는 요인이 있다면 그 요인을 없애줘야 한다. 규제 완화와 경제 활성화로 투자 심리가 되살아나고 기업에 활력이 생긴다면 정부가 재정을 퍼붓지 않아도 일자리는 저절로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제라도 기업을 ‘겁박’하기보다 각종 규제를 혁신적으로 푸는 정공법을 통해 기업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규제 혁신을 통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신산업 진입 장벽도 낮춰야 한다. 혁신 성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고용 상황이 개선되고 현 정부의 최고 목표인 소득주도 성장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서울신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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