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더 이상 실물로 소비되지 않는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스트리밍될 뿐이다.

학창시절 온갖 CD와 카세트테이프를 사 모았던 필자도 더 이상 실물 앨범에는 관심이 없다. 한 달에 1만원 안팎의 돈이면 새로 출시되는 대부분의 음원을 즉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북미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버즈앵글 뮤직(BuzzAngle Music)과 닐슨 뮤직(Nielsen Music)이 지난해 7월 공개한 리포트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내 오디오 스트리밍 수치는 2507억을 기록하며 2015년에 비해 무려 82.6%의 비약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사진 = 마장뮤직앤픽처스 제공/연합뉴스]
[사진 = 마장뮤직앤픽처스 제공/연합뉴스]

올해 1월 발표된 분석 결과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이어졌다. 지난해 북미 오디오 스트리밍 소비는 또 다시 50.3%나 성장해 3770억을 기록했다. 2016년에 비하면 1270억이나 늘어난 엄청난 수치다.

이는 2016년 북미 지역의 실물 앨범 판매량이 11.7% 감소하고 디지털을 포함한 전체 앨범 판매량도 15.6% 하락한 것과 대비된다. 지난해 앨범 소비는 더 줄어 앨범 판매는 14.6%, 곡 판매는 23.2% 감소했다.

이 와중에 눈길을 잡아끄는 독특한 수치가 있다. 바로 LP 판매량이다. 미국에서 바이닐(Vinyl)의 인기는 꾸준히 올라 지난해에는 무려 20.1%나 성장했다. 실물 앨범 판매량이 꾸준히 줄어들면서, 이제 북미 시장에서 LP의 비중은 실물 앨범 판매량의 10.4%나 차지한다.

수치로 미뤄 짐작하건대, 음악 애호가들에겐 디지털화된 실물 앨범도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오히려 아날로그가 주는 소리의 질감에 주목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한 달 사이 현장에서 접한 세 아티스트도 그랬다. 아날로그 음악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지난 3일 오후 필자는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을 찾았다. 세 번째 단독 콘서트를 연 가수 크러쉬(Crush, 본명 신효섭)를 보기 위해서였다. 최근 그는 “바이닐(Vinyl) 감성에 푹 빠져있다"며 “아날로그와 빈티지한 것의 매력을 알아달라”고 부탁했다.

크러쉬의 아날로그 사랑은 팬들에게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이 LP를 고르고 있는 모습을 공개하는가 하면, 지난달 17일 발표한 싱글 ‘넌(none)’을 LP로 판매해 시선을 끌었다. 이날 콘서트 현장에서는 한정 판매된 LP를 들고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팬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한정판 LP의 B사이드에는 미공개 비트 및 습작을 담아 소장가치를 높였다.

콘서트 당일, 크러쉬는 현장에서만 판매된 LP를 언급하며 “꼭 자세히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이 직접 넘버링한 LP의 0번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소장할 정도로 애착을 드러냈다.

크러쉬보다 더한 아티스트도 있다. 장기하는 아날로그 사운드에 몰두하다가 밴드 해체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위워크에서 열린 정규 5집 ‘모노(mono)’ 음감회에서 장기하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에 대해 “음반을 너무 잘 만든 결과”라고 설명했다.

앨범 발매 전, 수록곡을 모아놓고 ‘혼자’라는 키워드를 떠올린 장기하는 60년대 초반 나왔던 비틀즈의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시 출시된 LP판을 들으면서 그는 ‘열등한 기술이 갖는 장점’을 발견했다. 장기하는 10년의 밴드 생활 동안 ‘군더더기 없는 작곡 및 편곡’을 추구했다면서 모노 사운드가 주는 매력을 깨닫고 전곡의 믹스를 모노로 처리했다고 고백했다. 앨범 완성 이후에는 “우리가 추구했던 사운드로는 이 앨범 이상 좋은 퀄리티가 나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고심 끝에 밴드의 해체를 결정하게 됐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밴드 봄여름가을겨울도 내달 팬들을 위해 카세트 테이프로 된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다. 지난달 19일 오후 이태원 올댓재즈에서 열린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만난 김종진은 팬들과 추억을 강조하기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고백했다.

1962년에 태어난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컬 김종진, 1982년에 태어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보컬 장기하, 1992년에 태어난 크러쉬는 30년의 간극을 가진 아티스트들이지만 모두 아날로그 음악의 매력을 강조했다.

LP 한정판은 이제 케이팝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 악동뮤지션, 아이유, 에픽하이 등 적지 않은 유명 뮤지션들도 LP를 줄줄이 출시했다. 마장뮤직앤픽처스 LP 공장은 10여년만에 다시 가동을 시작했고, 소니뮤직도 LP를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1931년 등장한 LP가 2018년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에 다시 각광받고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일부에선 LP 구매자의 10%가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지 소장을 위해 구매한다는 이유로 힙스터들의 유행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소리의 문제인지 소장의 문제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날로그 음악이 다시 대중음악 소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 것인지 그저 작은 물결에 그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스포츠Q 홍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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