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내년부터 카드수수료를 전격 인하키로 했다. 26일 금융위원회가 당·정 협의 과정을 거쳐 발표한 수수료율 개편안의 골자는 우대수수료율 적용 범위를 연 매출 기준으로 기존의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확대키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대수수료 혜택을 받는 카드 가맹점 비중은 93%로 늘어나게 됐다.

세부 내용은 매출 기준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가맹점의 수수료는 기존 2.05%에서 1.4%로,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가맹점의 수수료는 2.21%에서 1.6%로 낮춘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은 또 연 매출 500억원 이하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 인하도 유도해나가기로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연 매출 30억 이하의 가맹점들은 규모에 따라 연 평균 147만~505만원의 카드 수수료를 절감하게 된다.

당국은 가맹점 전체로는 연간 8000억원의 수수료 절감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은 카드사들의 적격비용(원가)을 산정한 결과 연간 1조4000억원의 수수료 인하 여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 중 일부인 8000억원을 가맹점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데 쓰라는 게 정부 여당의 주문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시행도 하기 전부터 치열한 논쟁을 낳고 있다. 따라서 향후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반발에 나선 카드업계는 수수료율 개편안 마련의 근거로 제시된 당국의 셈법부터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카드사들의 사정이 금융당국이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사들의 전체 당기순이익은 1조2268억원이었다. 1조4000억원의 수수료 인하 여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금융당국이나 정부 여당은 카드사들이 과도하게 집행해온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면 자신들이 산출한 정도의 여력이 생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무이자 할부나 포인트 추가 적립 등 상품 약관에도 없는 일회성 마케팅 비용과 회원 모집을 독려하기 위해 설계사들에게 지불하는 돈 등을 줄이면 수수료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정부의 주장 역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의 입장을 논하기 이전에, 카드사들의 마케팅 비용 절감은 카드를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들의 손실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무이자 할부 등은 서민들에게 유용한 신용결제 서비스의 대표적 사례였다.

이뿐이 아니다. 카드사들은 새로운 조치가 시행되면 포인트 적립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한편 연회비를 인상해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려들 것이 뻔하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일반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가맹점들의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잖아도 이전보다 경영 상황이 나빠진 카드사들이 대거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카드업계 종사자들은 이번 조치가 발표된 뒤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이미 카드업계에 불기 시작한 구조조정 바람과 연계돼 있다. 실제로 KB국민카드와 신한카드에 이어 현대카드가 이 달부터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수수료 인하가 과연 소상공인들이 바라던 바였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다만 십몇만원일지라도 매달 수익이 늘어나니 고맙긴 하지만, 이 정도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분을 상쇄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사실 소상공인들이 정부를 향해 주로 요구해온 것은 최저임금 인상 자제와 최저임금의 분야별 차등적용이었다.

보다 기본적인 논란은 과연 정부가 이 정도로까지 시장 가격에 깊숙이 개입하는 게 온당한가 하는데서 출발한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틀을 훼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정부의 수수료율 개편안 발표 이후 나오는 소상공인의 요구가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영세 가맹점들이 협상권 부재로 대기업보다 많은 카드 수수료를 부담해왔다며 단체협상권 부여를 요구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또 동네슈퍼나 편의점 등이 주요 매출원인 담배를 판매할 때 담뱃세를 카드 수수료율 산정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이 세금으로 구성된 담뱃갑 전체에 대해 카드 수수료를 물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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