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내수 부진과 인건비·임대료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총 8000억원어치의 신용·체크카드 수수료를 깎아주기로 했다. 한데 근본 대책 없이 카드사와 일반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당정 협의를 통해 신용카드 우대 수수료율 적용 대상을 연 매출 ‘5억원 이하’에서 ‘30억원 이하’로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카드 수수료율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매출액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가맹점은 2.05%에서 1.4%로,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가맹점은 2.21%에서 1.6%로 카드 수수료가 인하된다. 이 구간에 해당하는 가맹점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연간 150만~5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그래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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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는 아울러 매출액 ‘30억원 초과 100억원 이하’ 가맹점과 ‘100억원 초과 500억원 이하’ 가맹점의 수수료율도 각각 2.2%와 2.17%에서 1.9%와 1.95%로 낮아지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매출액 500억원 초과 초대형 가맹점이 높은 협상력 등을 이유로 오히려 더 낮은 수수료율(1.94%)을 적용받는 상황을 미리 방지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 같은 조치로 절감되는 수수료는 연간 8000억원 정도다.

금융위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편안을 발표한 가운데 신용·체크카드 수수료를 두고 이해관계가 얽힌 가맹점주와 카드사 그리고 일반 카드 사용자의 입장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개편안 발표 후 카드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정부 안대로 가게 되면 내년도 적자가 불가피해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카드업계 일각에서는 가맹점주 지원 목적으로 시행되는 이번 정책이 카드사 직원들에게 폭탄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들었을 만큼 사정이 나빠진 카드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 얘기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카드업계 노동자들도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일반 카드 사용자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다. 카드사가 수수료 감면으로 인한 적자를 카드 연회비 인상이나 부가서비스 축소 등으로 만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포인트, 할인, 무이자할부 등 카드 회원이 누리는 부가 서비스는 회원 연회비의 7배 이상 수준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금융위의 설명이다. 시중 은행들이 발급하는 일반 카드 연회비의 경우 2만~3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일반 카드 사용자들은 한해 어림잡아 14만~21만원 이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한데 이번 개편안으로 인해 이 같은 혜택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도 이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는 분위기다. 금융위가 “과도한 부가서비스 축소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내년 1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

일각에서 이번 개편안에 대해 “소비자와 카드회사의 돈을 빼앗아 자영업자들에게 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문제의 원인은 최저임금 과다 인상인데 그걸 손보지 않고 손실을 엉뚱한 곳에 전가하는 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꼬집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카드 수수료율 개편안을 두고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지만, 카드사 노사가 반발하고 있고 일반 카드 사용자도 혜택 축소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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