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행보에 가볍게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속도 조절론이 힘을 받는 듯하더니 마침내 통화 당국자에게서 구체적 신호가 나왔다. 정책금리를 가파르게 올려도 좋을 정도로 중립금리의 수준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다.

발언의 주인공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었다. 그는 28일(현지시간) 이코노믹클럽에서 행한 강연을 통해 “미국 금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여전히 낮지만, 중립금리 범위의 바로 아래(Just Below)에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는 또 “(금리 인상에 있어서) 정해진 경로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시장 상황에 따라 흐름에 맞춰 기준금리가 결정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은 즉각 반색했다.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일제히 2%대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그의 말을 반겼다. 채권시장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기준금리와 흐름을 같이하기 마련인 국채 금리가 일제히 하락(채권가격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의 이같은 반응엔 연준이 당초 예상보다 느린 속도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돼 있다.

파월 의장의 이날 발언은 두 달 전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드러냈다. 지난 10월 초 그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중립금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했었다.

그가 말하는 중립금리란 경기를 과열시킬 정도로 낮지도, 그 반대로 경기를 냉각시킬 정도로 높지도 않은 적정한 수준의 금리를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면, 경로는 없다지만, 중앙은행이 도달 목표로 삼고 있는 금리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파월의 발언을 두고 갖가지 해석을 쏟아냈다. 통화 당국자가 금리 인상이란 방향엔 변화가 없지만 올릴 여지가 많지 않음을 시사한 만큼 언제 얼마나 금리를 더 올릴지를 두고 각자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아래’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 소개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그것은 0.5~0.75%포인트 정도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 당국자들은 중립금리가 2.75% 또는 3% 부근이라 여기고 있다”고 전해 ‘바로 아래’가 어디쯤일지를 추정할 수 있게 했다.

피터 부크바르라는 투자 전문가는 보다 구체적 표현으로 그 위치를 지목했다. 그는 “만약 3%가 중립금리라면 2.5%가 ‘바로 아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해석들이 정확하다면 파월 의장이 생각하고 있는 중립금리 지점은 지금보다 0.5%포인트 또는 0.75%포인트 높은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관행대로 연준이 한번에 0.25%포인트씩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향후 두 세 차례 더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시장에서는 연준이 다음달(현지시간 18~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 한번 금리를 올리고, 내년에 세 차례 더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해왔다. 연준은 올해 들어 이미 세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처럼 당초의 시장 전망대로 이어진다면 미국의 금리는 내년에 3.00~3.25%로 올라가게 된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1.50%다.

하지만 파월 의장의 이날 발언으로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다음 달에 한 차례 금리를 올린 뒤 내년에 한 두 차례만 더 금리 인상을 시도할 것이란 수정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에 금리 인상이 한번만 이뤄질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오고 있다.

파월 의장의 입장 변화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4분기부터 보다 둔화될 것이란 전망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미국은 올들어 3분기까지 3%대의 비교적 높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4분기부터 성장 속도가 크게 더뎌질 것이란 게 일반적 전망이다.

JP모건체이스는 미국의 GDP 성장률이 올해 4분기 2.5%로 내려간 뒤 내년 1분기엔 2.2%로 더 떨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4분기부터 내년 4분기까지의 분기별 성장률 전망치를 차례로 2.5%, 2.5%, 2.2%, 1.8%, 1.6%로 제시했다.

기관들이 성장률의 점진적 둔화를 점치는 근거는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및 재정지출 확대 정책의 효과 소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 및 투자 감소,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인한 리스크 증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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