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 사상가인 중국의 장자는 어느 날 꿈속에서 나비가 된다. 실컷 허공을 날아다니며 즐겁게 놀다가 잠에서 깨어난 뒤 그는 잠시 회의에 빠졌다. 꿈속에서 자신이 나비가 된 것인지, 반대로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지닌 인식의 자유분방함과 호방함을 잘 드러내주는 그 유명한 고사 ‘호접몽(胡蝶夢)’의 대강이다.

호접몽에 대한 해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자아와 외물(外物)은 본디 하나’라는 메시지, 그 이상을 추론해내야 이 고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즉, 호접몽의 진정한 메시지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에 입각한 반문을 통해 확고한 현실인식에 이르게 된다’라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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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호접몽의 메시지를 ‘작은 관점에 대한 반문을 통해 보다 큰 관점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라 정리하기도 한다.

호접몽의 교훈은 요즘 우리 경제현실에도 딱 들어맞는다. 우리의 경제정책이 특정 경제주체에만 초점을 맞추며 미시적 관점에서 입안되고 집행되다 보니 온갖 거시지표가 왜곡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는 작은 관점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큰 관점을 잃은 데서 비롯됐다. 이를 제대로 입증해준 것이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분) 결과’ 보고서다.

논란 속에 통계청장이 바뀌었지만 각종 통계수치들은 여전히 우리 경제가 상처투성이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 내 눈길을 확 잡아끈 것은 두 가지였다. 소득의 불균형 정도를 보여주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배율이 2003년 지금의 방식대로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가장 높아졌다는 것이 그 첫째였다. 집계된 배율은 5.52였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이 하위 20% 가구 평균소득의 5.52배라는 뜻이다. 이는 2003년 이후 가장 나빴던 2007년 수치와 동일하다.

빈부격차를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며 채택한 소득주도성장이 엉뚱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또 하나 눈길이 멈춘 부분은 가구당 월평균 비소비지출이 작년 3분기 때보다 무려 23.3%나 늘어나면서 사상 처음으로 100만원을 넘어섰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3분기의 월평균 가구당 비소비지출은 106만5000원이었다. 소득으로 벌어들인 돈이지만 개별 가구가 세금이나 사회보험, 공적 연금, 이자 등의 명분으로 매달 평균적으로 지불한 돈이다.

사정이 이러니 웬만한 고소득 가구가 아니고서는 소비를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비소비지출에서도 각 가구가 가장 불만을 지니는 항목은 역시 세금일 터이다. 보험료나 이자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지만 세금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인들이 유류세 인상 반대를 외치며 벌인 ‘노란 조끼’ 시위는 과도한 증세에 대한 시민들의 내재된 반발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변했다.

물론 우리의 과세 현실이 ‘가렴주구’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 증세와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 ‘부자 증세’에 초점을 맞춘 과세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부자의 돈이든 빈자의 돈이든 세금이 늘어나면 그만큼 소비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반대로 세금이 줄어들면 쓸 돈이 늘어난다. 경제적 호황을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며 공치사에 여념이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약(弱)달러와 함께 감세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약달러와 감세는 미국 가구의 소비 여력을 키워주는 직·간접 요소들이다.

얼마 전 우리 정부가 한시적으로나마 유류세 인하를 단행한 일 또한 감세를 통한 소비 진작이라는 정책원리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우리의 경제정책은 야당으로부터 ‘세금주도성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감세와는 거리가 있다. 야당뿐 아니라 많은 경제전문가, 국제기구들도 한국 정부의 증세에 기댄 재정 의존도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통계청의 이번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우리 정부의 재정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 단면이 1분위 가구의 소득 중 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31만8000원이었다. 이 중 60만4700원이 이전소득이었다. 이전소득이란 정부 지원 또는 가족의 도움 등으로 얻은 불로소득을 말한다. 대부분이 정부의 재정지원에 의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1분위 가구의 월간 근로소득, 즉 일해서 번 돈은 이보다 적은 47만8900원이었다.

1분위 가구가 지금 정도의 평균소득을 올리는 것도 정부의 재정지원 덕분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재정에 크게 의존하는, 그것도 언 발에 오줌누기식의 재정 투입 방식은 효과도 크지 않거니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재정의 과도한 투입이 불러온 재앙은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 사례를 통해 익히 보아온 바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전망’ 보고서는 한국의 확장적 재정 운용이 지닌 단기적 성과를 평가하면서도 장기적 재정계획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정에 주로 의존하려는 경제정책의 한계를 환기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의 통계청 자료들은 일관되게 지금의 왜곡된 경제현상이 정책적 오류에서 초래됐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빈부격차를 해소한답시고 역대 어느 정부보다 통 크게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범은 역시 소득주도성장이다. 이론상 이상적으로 보였지만 막상 현실에 적용해보니 부작용이 더 크다는 점을 모든 경지제표가 보여주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행방안으로 최저임금 급속 인상을 단행하니 저소득층 일자리가 대거 사라져 빈곤층의 근로소득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고, 부랴부랴 증세를 통해 재정을 확보한 뒤 이를 투입해 그 일부를 보전해주고 있는 게 이번 통계청 보고서를 통해 나타난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다급한 불끄기에 재정을 쏟아붓다 보니 잠재성장률 견인 등 정작 필요한 일엔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여전히 ‘약진, 앞으로’다.

소득주도성장을 혁신성장, 공정경제와 묶어 경제정책의 ‘3축’이라 주장하지만, 나머지 둘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수반될 책임의 물타기용으로 동원된 것들이다. 내가 보건대 ‘혁신’과 ‘공정’은 정책이 아니라 당위의 개념일 뿐이다.

학자들이 연구 과제를 수행할 땐 새로운 가설을 세운다. 그 가설을 입증해내면 연구는 성공한다. 하지만 신중한 학자라면 가설을 세운 뒤 반드시 경쟁가설을 찾는다. 그리곤 그들을 비교 평가해 처음의 가설이 모든 경쟁가설을 압도한다고 확신해야 비로소 그것을 과제 수행을 위한 가설로 채택한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세워진 가설을 입증했다 하더라도 결과를 두고 다시 한 번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그 판단은 상식적이어야 한다. 만약 결과를 두고 “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전 과정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게 정답이다. 황홀한 꿈만 꾸며 연구 결과를 맹신한 채 억지로 적용하다간 게도 구럭도 다 놓치게 된다.

그래서 드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실험을 시작할 때 과연 경쟁가설을 찾아 대비시켜 보았을까? 1년 반에 걸쳐 가설을 입증하려 노력한 결과 “역시 예상대로네”라는 자체 판단을 내린 걸까? 이저 저도 아니라면 아직도 꿈만 좇고 있는 것일까?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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