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였다. 야심차게 시작한 힙합 인터뷰 코너의 첫 주자로 1세대 래퍼 주석과 만났다. 한 시간이 넘는 인터뷰 말미, 추천하고 싶은 후배 아티스트가 누구냐고 물었다. 주석은 주저 없이 디피알 라이브(DPR LIVE, 홍다빈)를 꼽았다.

지난해 3월 첫 EP 앨범 ‘커밍 투 유 라이브(Coming To You Live)’를 발매했던 디피알 라이브는 당시 필자에게도 생소한 뮤지션이었다. 드림 퍼펙트 레짐(Dream Perfect Regime) 레이블 소속인 그의 활동명은 원래 ‘라이브(LIVE)’였지만, 헛갈리는 이들이 많아 레이블 약자(DPR)를 앞으로 내세우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연합뉴스]

드림 퍼펙트 레짐 소속 크루들은 뛰어난 영상미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의 인상적인 영상은 소속 래퍼 라이브의 음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사운드에 맞춰 완벽히 재단된 영상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상적인 작품을 꾸준히 업로드한 결과, 드림 퍼펙트 레짐은 유튜브 채널 구독자 30만명을 확보했다. 여기에 디피알 라이브가 발표한 음원마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명성은 높아만 갔다. 대중에게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지만 100만 조회수를 넘기지 못한 뮤직비디오는 하나도 없다.

2016년 4월 드림 퍼펙트 레짐이 영상을 만들고 래퍼 라이브와 오왼 오바도즈, 플로우식, 펀치넬로, 식케이가 참여한 ‘응 프리스타일(EUNG FREESTYLE)’ 뮤직비디오는 무려 32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 영상 하나로 라이브는 힙합 신의 기대주로 부상했다.

이후 발표한 디피알 라이브의 첫 EP 선공개 싱글 ‘재스민(Jasmine)’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1300만 조회수를 넘어섰다. 이 음악은 현재 카카오 사의 광고에 사용되며 재조명받고 있다. 유튜브 영상 두 개로 홍다빈은 우리나라에서 Mnet ‘쇼미더머니(Show me the money)’를 거치지 않고도 이름을 알린 유일한 래퍼가 됐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가요계 전반에서 큰 화두다. 지난 7월 에스엠, 와이지, 제이와이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미스틱, FNC엔터테인먼트, 스타제국까지 국내 7대 기획사가 힘을 모아 뮤직&크리에이티브 파트너스 아시아 주식회사(Music and Creative Partners Asia, MCPA)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MCPA 설립 목적은 베보(VEVO)처럼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데 있다.

2009년 12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 구글, 아부다비 미디어 컴퍼니가 연합해 설립된 베보는 세계 최대 비디오 호스팅 서비스 플랫폼이다. 유튜브에선 1770만 구독자를 확보한 채널이 됐고, 동영상을 제공하는 대가로 광고 수익 일부를 나눠갖고 있다.

직접 광고 영업을 해 이익을 확보한 과실(果實)은 엄청나다. 일반적으로 클릭당 1원꼴인 영상 수익은 베보에게는 7배 정도 더 주어진다. ‘한국형 베보’ MCPA가 유튜브와 딜에 성공할 경우, 케이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명한 이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에스엠, 와이지, 제이와이피의 올해 3분기 영업 이익 합계는 232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대비 222%나 급증했다. 이는 유튜브로 소비되고 있는 음원 부문의 폭발적인 성장 덕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와이지 엔터테인먼트 소속 블랙핑크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1494만명)가 방탄소년단(BTS)보다 100만명 이상 많다는 건 주목할 만한 성장 포인트”라며 “이제 엔터 업계는 노동집약적인 공연에 치중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콘텐츠를 확보하면 앉아서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와이지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캐시카우였던 빅뱅의 멤버들이 대부분 입대한 상황이지만, 최근 수익구조 변화로 인해 피해는커녕 수혜가 커졌다. 이와 더불어 와이지가 넷플릭스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론칭하면서 새로운 수익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한국형 베보 론칭이 현실화될 경우, 성장폭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며 “한국 증시 폭락 속에서도 결국 이들은 승승장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투 히트 원더’ 싸이 이후로 케이팝 및 세계 음악 시장에서 유튜브의 영향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팽창했다.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최초로 32비트 정수 최댓값인 21억4748만3647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고, 그 폭발력은 유튜브 최초의 서버 증설을 가져왔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현장에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진행된 어반자카파의 정규앨범 ‘05’ 발매 기념 쇼케이스에서 한 외신 기자는 이들이 국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2016년 발표한 ‘널 사랑하지 않아’가 유튜브 조회수 3678만을 넘어섰고, 같은 해 캐나다 투어를 돌았다는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일명 ‘유튜브 인베이전(Youtube Invasion)’은 이미 대중문화 전반에 자리하고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크리에이터가 되거나 크리에이터의 영향을 받는 듯한 인상이 짙다. 최근 필자와 인터뷰한 래퍼 보이텔로는 학창 시절 유명 유튜버 ‘마라시(marasy8)’의 피아노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래퍼 송좌도 직접 영화채널을 운영하며 또 다른 돌파구를 마련 중이다.

래퍼 이센스와 힙합듀오 XXX, DJ 250의 소속사 비스츠앤네이티브스 관계자도 최근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유튜브를 통해 소속 아티스트들의 정체성을 보다 확고하게 정립하려 노력 중”이라며 “공식 채널에 이센스의 작업기를 공개한다든가 DJ 250이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를 꾸준히 업로드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는 아직까지 ‘네이버’지만 지난해 네이버의 최다 검색어는 ‘유튜브’였다. PC를 켜고 브라우저 메인 화면에 네이버를 연 누리꾼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찾아 들어갔고, 모바일에서도 날씨에 이어 유튜브를 가장 많이 검색했다. 이를 두고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곧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라고 전했다.

이는 비단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다. 유튜브는 2015년부터 네이버의 최다 검색어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동영상 광고시장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유튜브의 국내 동영상 광고시장 점유율은 40.7%를 차지한다. 연간 동영상 광고 매출 1169억원은 네이버와 비교해 4배가 넘는 수준이다.

‘유튜브 인베이전’은 비디오게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미국 게임사 투케이(2K)는 전통의 농구 게임 ‘NBA 2K’ 시리즈에 이어 ‘플레이그라운즈(Playgrounds)’의 두 번째 시즌을 발매했다.

이 게임은 단순 아케이드 성향을 지녔지만 필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마이클 조던,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자바,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제임스 하든 등 전·현직 전설들이 즐비한 가운데 NBA 출신이 아닌 게임 내 고유 선수 13명을 포함시킨 것이다.

수치가 너무 낮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황당한 스탯을 지닌 이 선수들의 실제 모델은 유명 유튜버들이다. 투케이는 100만명 안팎의 구독자를 확보한 자국 내 유명 게임 유튜버들의 목소리로 코멘터리를 넣고, 해당 캐릭터를 활용해 유튜버가 영상을 재생산해내도록 디자인했다.

필자가 구독 중인 미국 유명 유튜버 큐제이비(QJB)는 10분 남짓의 영상을 올리며 자신의 해설을 직접 따라 하고 본인 캐릭터로 게임을 운영해 게이머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또 다른 유튜버 트로이댄(Troydan)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자신의 캐릭터에 불만을 표하고 자신의 일부 스탯이 실제 선수들보다 높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게임을 비웃기도 했다.

유튜브 인베이전은 방송가와 정계를 넘나들고 있다.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이 방송에 출연해 에이핑크 보미와 개그맨 윤정수에게 구독자 모집법을 알려주는가 하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유튜브 채널 ‘TV 홍카콜라’를 출범시켰다.

필자의 5살 된 조카가 애니메이션 ‘베이블레이드’ 영상을 보는 곳도, 칠순을 앞둔 어머니가 요리 레시피를 찾는 곳도 모두 유튜브다.

싸이 이후, 1억뷰는 유튜브 내에서 흔한 일이 됐다. 전 세계인들의 삶에 파고든 유튜브 인베이전은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케이팝 인베이전(K-Pop Invasion)’을 불러왔다.

한국형 베보가 본격적인 행보를 위해 기지개를 켜는 가운데 유튜브는 또 다시 서버 증설을 고려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