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완성하려 노력해온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사업 주체이자 투자 주체들인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마련한 잠정 합의안을 조인하는 일만 남겨두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한동안 제기됐지만, 막판에 지역 노동계의 반발이라는 암초를 만난 것이다.

지역 노동계 등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광주시는 다시 한번 입장을 바꿔야 했고, 이에 현대차가 수정안 수용을 거부함으로써 사업의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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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시비가 된 부분은 합의안 중 ‘임금 및 단체협약 유예’ 관련 조항이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장기간의 협상 끝에 마련한 합의안에는 법인 설립 후 자동차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는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광주시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합의안을 5일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에 제출한 뒤 의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노동계가 문제의 조항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일이 꼬였다. 그 바람에 협의회는 해당 부분을 수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의안을 의결했다. 조건부 의결을 한 셈이다.

수정된 내용은 해당 조항을 삭제한다는 것과 노사상생협의회를 특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까지 존속시킨다는 것 등 세 가지로 이뤄져 있었다. 셋 중 하나를 현대차로 하여금 받아들이게 하라는 것이 노동계의 요구였다.

노사상생협의회란 새로운 자동차 생산 법인에 만들어질 조직을 말한다. 새 법인엔 당장 노동조합이 없으므로 이 기구를 통해 노사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협의회에는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들이 함께 참여하게 된다.

광주시는 수정안을 현대차 측에 제시했지만 현대차는 즉각 기존의 입장이 바뀐데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며 “수용 불가”를 천명했다. 수정 제시된 조항엔 임단협 유예 기간이 전혀 명시돼 있지 않았던 게 그 이유였다.

현대차는 입장문을 통해 “투자 타당성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라고 못박았다.

현대차는 광주시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 실망과 불만을 나타냈다. 전권을 위임받았다며 협상에 나서 합의를 이룬 뒤 수정안을 제시하는 일이 거듭됐기 때문이다.

광주시는 지난 6월 신설 법인 설립 후 5년 동안은 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과 연동해 임금을 인상하자는 방안을 현대차에 제시했었다. 이에 따라 당시 광주시와 현대차가 맺은 투자협약안에는 ‘5년간 임단협을 유예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노동계가 반발하자 광주시는 ‘5년 동안’ 대신 ‘자동차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를 새로 제의했다. 그리고 현대차가 수정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번에 양측 간 합의안이 도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지난 5일 노사민정협의회에서 노동계의 반발과 함께 논란을 낳았고, 광주시는 다시 한번 부랴부랴 수정안을 만들어 현대차에 제시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현대차가 더 이상 광주시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광주시의 오락가락 행보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그 때문인 듯 보인다.

현대차는 “광주시가 약속한 안을 노사민정협의회를 통해 변경시키는 등 혼선을 초래하고 있는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광주시의 거듭된 입장 번복을 비난했다.

현대차는 그러면서도 “광주시가 향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투자 협의가 원만히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마지막 희망마저 버리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합의가 가능한 확실한 안을 만들어오라며 공을 다시 광주시로 넘긴 것이다.

다급한 쪽은 아무래도 광주시일 듯하다. 정치권에서는 광주에서의 시도가 무산되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는 투의 은근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현대차 공장 유치를 원하는 지역이 적지 않다는 점 또한 광주시엔 무언의 압박이 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을 거꾸로 해석하면 시간은 현대차 편이라 할 수 있다.

광주시는 6일로 예정됐던 조인식을 연기하고 다시 현대차와의 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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