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미국과 중국 간 기술패권 다툼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화웨이 등을 앞세워 ‘기술 굴기’를 이루려는 중국과 제재 및 압박을 통해 그 꿈을 잠재우려는 미국의 의지가 정면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충돌 사건은 화웨이 오너의 딸이자 이 회사 재무담당책임자(CFO)인 멍완저우(孟晩舟) 부회장(46)을 미국의 의뢰를 받은 캐나다 사법당국이 밴쿠버에서 체포함으로써 발생했다. 화웨이는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 생산업체이자 5G산업의 글로벌 선두 주자다. 멍 부회장은 이 회사 설립자이자 최고책임자(CEO)인 런정페이(任正非·74)의 딸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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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오너 일가의 일원이면서 핵심 요직에 있는 임원을 사실상 미국이 체포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더구나 멍 부회장이 체포된 날은 미국과 중국의 두 정상이 무역전쟁 해소를 위해 아르헨티나에서 양자회담을 가진 지난 1일(현지시간)이었다. 시점이 주는 의외성으로 인해 사건이 미친 충격 강도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사법당국은 멍 부회장 체포가 미국 사법당국의 의뢰로 이뤄졌으며, 그의 신병을 미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체포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 역시 무슨 이유로 멍 부회장 체포를 의뢰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체포작전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체포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것을 그 이유로 추정했다.

이번 사건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미·중 두 나라가 90일 휴전과 함께 해결책 모색에 나선 무역전쟁에 큰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체포사건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멍 부회장 체포사건이 무역전쟁의 진전과 별개로 다뤄질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단순히 관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화웨이 등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인식과 자세가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외신 보도 등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는 물론 의회조차도 오래 전부터 화웨이 등 중국 굴지의 첨단기술 업체들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지녀왔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2012년 10월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가 발간한 ‘중국 통신사 화웨이와 ZTE가 제기하는 미국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조사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화웨이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위험한 기업으로 묘사돼 있다. 화웨이가 중국 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외국 기업들의 기밀을 훔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미국의 적대국들과 수상한 거래를 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회사 내부에 중국 공산당 위원회가 설치돼 있으나 화웨이는 그 성격과 기능을 밝히길 거부하는 것은 물론 정확한 기업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중국 당국이 화웨이를 이용해 외국의 기밀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정치공작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인식은 미 행정부도 공유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공공기관들은 화웨이 장비 구매를 중단했고, AT&T와 버라이즌 커뮤니케이션스 등 미국 통신회사들도 화웨이가 생산하는 스마트폰의 미국내 판매를 금지했다. 나아가 미국은 동맹국들에게도 화웨이 장비 구입의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펜타곤은 군사기밀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미국 군대 내에서의 화웨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고,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는 화웨이가 이란과 북한 등에 대한 무역제재를 위반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여왔다.

이처럼 미국이 화웨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무척이나 부정적이다. 심지어 화웨이가 사실상 중국 정보기관의 일부분이라는 시각까지 드러낼 정도다. 이같은 인식은 화웨이처럼 정보통신 기술을 다루는 회사에 대해 더욱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웨이 오너인 런 CEO가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으로서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미국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기술의 불법 유출 등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최근 중국 푸젠진화반도체를 기술 절취 혐의로 기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이와 함께 푸젠진화에 대한 소프트웨어 및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같은 정황들을 종합하면, 화웨이 멍 부회장에 대한 미국 사법당국의 조치는 결코 일회성 사건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문제 해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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