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2기 경제팀이 출범했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함과 함께였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문 대통령은 임명장을 수여한 뒤 예정 시간을 20분이나 넘겨 40여분 동안 신임 경제부총리와 환담하며 각종 주문을 쏟아냈다. 그만큼 대통령으로서 당부할 말, 주문할 말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상황이 엄중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의겸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에게 ‘한 팀’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공직자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은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경제부처 장관들과 한 팀이 돼 함께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 김수현 정책실장(왼쪽부터). [사진 = 연합뉴스]

‘원팀’이란 표현은 청와대가 홍남기 부총리 후보자 지명 사실을 발표할 때도, 홍 부총리가 후보자로서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나왔던 표현이다.

이를 두고 1기 경제팀의 두 축이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시종 갈등했던 것을 염두에 둔 반응이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청와대가 1기 경제팀의 투톱을 동시에 경질한 일 역시 정책 방향의 전환이 아니라 불협화음 해소를 위해서였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청와대와 홍 부총리가 합창하듯 ‘원팀’을 강조하는 것은 불협화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적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 간 불협화음은 소득주도성장을 골자로 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크게 훼손했다. 이는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 이전의 심각한 문제로 인식됐었다.

이 날 문 대통령이 강조한 ‘한 팀’은 홍 부총리를 축으로 하는 경제관련 부처 장관들을 의미하는 듯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여러 경제부처 장관” 또는 “다른 경제부처 장관” 등의 표현을 구사하며 “한 팀이 돼 달라”, “협력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라는 등의 당부의 말을 했다.

김 대변인이 공개한 내용 중에 직접 드러나 있진 않았지만, 문 대통령 역시 2기 경제팀이 청와대 김수현 정책실장과의 투톱이 아니라 홍 부총리를 축으로 하는 원톱 체제로 운영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김수현 실장도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는 “더 이상 투톱 같은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청와대는 홍 부총리 후보자를 지명할 때도 비슷한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당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원팀’을 강조하면서도 “김 정책실장은 포용국가 설계자로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실행을 총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표현을 종합하면 ‘원팀’은 홍 부총리가 소속된 행정부를 넘어 청와대 정책실까지 아우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김 부총리가 명실상부한 경제사령탑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전임자와 달리 홍 부총리가 과연 원톱으로서 경제정책을 총괄해 나갈지는 2기 경제팀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일상화됐을 정도로 청와대의 입김과 기능이 강화돼 있는 현 정권 하에서 그게 가능하리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홍 부총리의 개인적 성향 역시 원톱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런 마당에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에게 경제정책 협의체 구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홍 부총리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경제관련 부처의 장관들이 참여하는 경제정책 협의체 구상은 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김 대변인은 경제부총리 임명 당일의 브리핑에서 “홍 부총리와 김 정책실장이 호흡을 맞춰 일하며 경제 관련 장관들을 수시로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협의체 참가자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불분명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도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과거 논란 많던 ‘서별관 회의’가 부활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서별관 회의’는 정식 기구는 아니었다. 그냥 청와대 본관 서쪽의 별관에서 청와대 수석 등과 경제부처의 장관급 인사들이 수시로 만났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엔 한국은행 총재가 이 회의에 참석해 한은 독립성 시비가 초래되기도 했다.

청와대는 서별관 회의 유의 모임이 부활될 일은 없을 것이란 입장을 표하고 있다. 경제부처 장관들 모임에 한은 총재가 참석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도 협의체 운영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형성될 이런 구도는 2기 경제팀에 대한 청와대의 입김이 이전처럼 유지되도록 만들 것으로 관측된다. 서별관 회의가 ‘밀실회의’ 논란을 빚었듯이 새로운 협의체를 통해 청와대가 비공개적으로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그러지 않아도 문제로 거론되는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무소신과 복지부동이 더욱 심화될 위험성도 커지게 마련이다. 경제정책 방향이 잘못됐다 할지라도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흐름을 따라가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이런 우려를 얼마나 불식시키고 경제를 효율적으로 살려내느냐가 홍남기 부총리가 이끌 2기 경제팀의 당면 과제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주도성정 정책이 갖는 한계를 얼마나 소신 있게 지적하고 청와대를 설득하면서 혁신성장을 이룰 것인지가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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