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단단히 찍혔다. 통화정책 운용과정에서 역린을 건드린 것이 원인이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화나게 한 구체적인 이유는 연준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일이다. 이번 회의가 시작되기 수일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방송 인터뷰와 트위터 등을 통해 기준금리 인상 자제를 연준에 촉구했다. 이번엔 백악관 정책국장도 촉구 대열에 동참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그래픽 =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 활성화를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삼고 있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이뤄져온 그의 행동은 상당수의 미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상황이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증시의 경우 두 달째 부진에 빠진 채 심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채권 시장도 좋지 않은 흐름을 이어갔다. 내년부터 미국 경기가 둔화될 것이란 전망도 조금씩 제기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원인 중 하나를 연준에서 찾고 있다. 파월 의장이 이끄는 연준이 지속적으로 금리인상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그 결과 금융시장에 찬바람이 몰려들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전보다 글로벌 환경이 악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불평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이번 금리인상 결정에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취임 후 이번까지 일곱 차례의 금리 인상이 있었지만 이번 것은 성격이 다르다는 인식을 지닌 듯 보인다.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은 국내외 정황상 기준금리를 올릴 때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소식통들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주가 하락 흐름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기준금리를 또 올리자 격노한 나머지 파월 의장 해임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며칠 동안 수차례에 걸쳐 파월 의장 해임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이다.

통신은 대통령 보좌진은 이번 성탄절 휴가 기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백악관 대변인들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다고 전했다.

중앙은행 수장의 교체는 워낙 민감한데다 정치적 논란까지 부를 수 있는 사안이라 실제로 해임이 단행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대통령이 수장을 임명하는 기관이라지만 중앙은행은 독립성을 기반으로 경제의 혈관이 원만히 작동하도록 하는 심장과도 같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상이 연준 의장 해임 사유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법엔 대통령은 ‘적법하고 구체적인 이유로’ 연준 이사들을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이번 금리 인상이 그 같은 해임 요건을 충족하느냐 여부다.

보좌관들이 하릴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가 가라앉기만 바라고 있는 것도 이 사안의 민감성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를 돌아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번 찍힌 사람들은 여지없이 직을 떠나야 했다. 다소 시차가 있었을 뿐 사실상 해임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근한 예로 들 수 있는 인물이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제프 세션스 전 법무부 장관,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그리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이다. 앞의 두 사람은 이미 직을 떠났고, 켈리 실장과 매티스 장관은 각각 올해 연말, 내년 2월 말까지만 근무한다고 예고돼 있다. 이들이 사임했거나 사임하는 이유는 한결 같이 의견 차이를 드러내다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이었다.

이들 중 틸러슨 전 장관과 켈리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전 장관의 경우 해임 후에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던지 트위터를 통해 “멍청하고 게을렀다”고 비난했다.

곧 물러나기로 한 매티스 장관은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결정하자 사임 의사를 밝혔다. 매티스 장관은 동맹국들을 존중하지 않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난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 간의 갈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월 인터뷰 도중 매티스 장관을 “민주당원”이라 공격한 데서도 잘 드러났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맞선 이들을 통칭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라 칭해왔다. 나머지 인사들을 ‘어린이들’로 비꼬려는 의도가 담긴 역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마저 해임하는 강수를 둔다면 미국 내 정치적 논란은 물론이거니와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하나 추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 통화정책의 일관된 메시지가 실종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물론 글로벌 경제 전반에 또 하나의 변수가 추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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