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야마 아키라(とりやま あきら)의 만화 ‘드래곤볼’은 그의 고향인 나고야 지역 경제뿐 아니라 일본 전반에 걸쳐 문화산업 종사자의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3년 연재를 염두에 두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던 그가 오랜 기간 연재를 멈추지 못했던 건 일본 문화부 고위 관계자의 읍소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1984년 연재를 시작한 ‘드래곤볼’에는 독특한 기계가 등장한다. 반쪽짜리 안경을 닮은 스카우터(scouter)다. 상대방의 전투력을 측정하고 행성 간 초장거리 통신이 가능하다는 콘셉트를 담은 이 장치는 지금까지 패러디될 정도로 원작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스카우터의 실물 버전은 이미 세상에 등장한지 오래다. 현실에선 날씨나 교통, 사물의 정보가 만화 속 전투력을 대신하고 있다.

증강현실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 서울 종로구 신영동의 삼거리 육교. [사진 =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증강현실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한 서울 종로구 신영동의 삼거리 육교. [사진 =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2012년 구글의 공동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소개한 웨어러블 기기 ‘구글 글라스(Google Glasses)’는 개발자들에 한해 1500달러가 넘는 가격에 판매까지 이뤄졌다. 눈앞에서 펼쳐진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에 개발자들은 높은 관심을 보였고, 이를 착용하고 바라본 세상의 모습은 유튜브를 통해 공개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확히 한 달 전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는 한 단계 진화된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한다. 스마트 렌즈를 착용하면 보이는 혼합현실(Mixed Reality)에서 주인공 현빈은 상대와 칼싸움을 벌이고 레벨업을 이뤄낸다. ‘플레이어 이외의 캐릭터(Non Player Character)’와 대화를 하고 더 좋은 무기를 얻기 위해 온갖 공을 들여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현재의 모습을 적절히 표현해 낸 이 작품은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매력적인 시나리오에 반한 배우 김의성은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것을 이 드라마를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드라마의 성공을 확신했다.

스마트 렌즈를 이용한 경우는 아니지만 증강현실 게임은 이미 전 세계를 강타한 바 있다. 2016년 7월 출시된 ‘포켓몬 고’(Pokemon GO)가 그 주인공이다.

호주·뉴질랜드·미국 등에서 먼저 선보인 이 게임은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가상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특정 장소에 운집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화면 속 캐릭터에 집착해 사고를 당하는 등 사회 문제까지 일으키며 이슈를 양산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도 2017년 1월 대한민국에 정식 출시되기 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가상의 포켓몬을 잡기 위해 강원도 속초로 몰려든 사람들 덕에 평일 속초행 버스표는 동이 났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혼합현실은 공연장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이 기술은 일본의 전설적인 록그룹 엑스재팬 기타리스트 히데(ヒデ)처럼 아쉽게 세상을 떠난 고인을 되살려내는 데 적절히 활용된다.

2010년 4월 서울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열린 그룹 동물원 콘서트에서는 원년 멤버 김광석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했다. 당시 팬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펼쳐졌던 미공개 공연 영상을 합성해 만든 고(故) 김광석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1월에는 넥스트의 영원한 리더 신해철 홀로그램 콘서트가 고인의 3주기를 맞아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리기도 했다.

국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인 SM은 홀로그램 콘서트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2004년 보아의 일본 투어 공연에서 홀로그램을 이용해 스크린 속 두 명의 보아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을 공개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동방신기의 일본 투어, 2013년 서울 강남역사거리 엠스테이지에서 펼쳐진 '소녀시대 V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케이팝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홀로그램으로 대표되는 입체영상 또는 증강현실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제단체 VR·AR연합은 업계의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4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올해는 영화 ‘매트릭스’가 탄생한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주인공 네오(Neo)의 비밀 창고로 등장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속 파생실재(hyper real)는 이제 현실이 됐다.

만화 ‘드래곤볼’이 문화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만화 속 스카우터로 대변되는 증강현실도 문화산업 종사자의 경제활동에 더욱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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