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부터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서 미·중 무역전쟁 해소를 위한 양측 간 차관급 협상이 시작된다. 이번 협상 결과를 보면 향후 양국 간 무역전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작년 12월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르헨티나에서 만나 ‘90일 휴전’에 합의한 뒤 두 나라 실무진은 활발한 접촉을 벌여왔다. 이번 협상은 그 결과를 토대로 이뤄지는 대규모 고위급 협상인 만큼 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리부터 협상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협상에서 무역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정도의 합의가 도출될 것이란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우리가 합의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중국은 정말로 합의에 이르길 원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합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풍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은 중국의 어려운 현실에 기반을 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간절한 심정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음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는 그의 발언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에 의해 떼밀리듯 무역전쟁에 나선 이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아직 신흥국으로서 고도 성장을 유지해야 할 입장이지만 당장 경제성장률에서부터 타격을 입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17년 6.9%를 기록했으나 지난해엔 6.5%로 둔화된 것으로 관측된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특히 제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무역전쟁은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과 장기 산업전략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공격이 중국의 ‘기술 굴기’와 패권 확립 시도를 저지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미국의 속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베이징 협상에서 주로 다뤄질 의제도 단순히 관세인하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보다 더 중요하고도 난해한 문제는 각종 비관세장벽과 지식재산권, 강제적 기술 이전, 환율 조작, 노동기준 등이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중국의 장기 산업발전 전략인 ‘중국제조 2025’도 논의 대상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양국 정상 간에 합의된 ‘90일 휴전’ 이후 갖가지 유화 제스처를 취해왔다. 중국 내 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강제적 기술 이전을 금지하는 내용의 외국인투자법 초안을 마련했고, 특허 침해에 대한 배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드러내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국유회사들은 미국산 대두 구매를 시작했으며, 미국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해 고율관세를 부과하려던 계획도 보류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합의를 원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배경이다.

90일 휴전 시한인 오는 3월 1일까지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미국이 20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곧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할 것이란 점도 중국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아직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나머지 265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도 미국의 압박 카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 수입품이 적어 더 이상 관세를 부과할 대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장기전을 이어갈 실탄이 미국보다 크게 부족한 것이다.

미국의 대중 압력이 얼마나 다양한 각도에서 광범위하게 가해지고 있는지는 베이징 차관급 협상 참석자 면면만 보아도 웬만큼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협상에 참석하는 미국 측 인사는 제프리 게리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그레그 다우드 USTR 농업부문 협상 대표, 데이비드 맬패스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 길 캐플런 상무부 국제통상 담당 차관, 테드 매키니 농무부 통상 및 해외농업 담당 차관, 메리 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글로벌·아시아 경제부문 국장 등이다.

협상 의제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참석자들을 보면 다양한 주제가 논의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큰소리치는 것에 비하면 이번 협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는 그리 높지 않은 듯 보인다. 전문가들 중엔 이번 협상에서 그동안 부과됐던 관세를 완화하는 정도의 성과가 나올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 이도 있다.

그같은 분위기를 잘 드러낸 것이 이틀 일정으로 5일(현지시간)까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진행된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다. 중국 관련 세션이 집중적으로 마련된 이 총회에서 제기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카고대 교수인 리처드 H. 세일러는 미·중 무역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란 변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에 농담조로 내놓은 답변이었다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행동이 무역전쟁 전개 과정상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는 점을 말한 것으로 해석됐다.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갈등을 키우는 주요인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양국 간 협상 전개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은 주제 자체가 갖는 민감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중국제조 2025’의 경우 이를 논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 자체가 중국인들에겐 경제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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