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혁신입니다.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여 새로운 시장을 이끄는 경제는 바로 ‘혁신’에서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집권 3년차 국정운영 기조로 ‘혁신성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간 ‘공정경제’ 기반 위에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는 3대 경제정책 기조를 앞세웠던 문 대통령은 집권 중반기부터는 ‘혁신성장’에 무게 중심을 둘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새해 국정운영 구상이 담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 앞서 새해 국정운영 구상이 담긴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올해 혁신성장을 맨앞에 제시한 것은 경제와 민생 분야에 나타난 부진한 성적표가 지지율 하락의 주된 원인이라는 긴박한 상황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거론한 혁신성장을 위한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16일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 겸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풀랫폼 경제 활성화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플랫폼 경제는 기존 주력산업, 신산업, 에너지 등 산업 전반을 혁신하는데 근간이 되는 인프라, 기술, 생태계를 일컫는다. 혁신성장의 기반이 되는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우리 경제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며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진단 아래, 그 돌파구로서 ‘4대 정책방향’과 ‘플랫폼·생태계 조성’, ‘8대 선도사업’을 선정하며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간 정부가 추진해온 혁신성장의 성과를 꽤 긴 부분을 할애해 설명했다. 사상 최대인 3조4000억 원의 벤처투자가 이루어졌고, 신설 법인 수도 역대 최고인 10만개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전기차는 2017년까지 누적 2만5000대였지만 지난해에만 3만2000대가 새로 보급되었고 수소차는 177대에서 889대로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2022년까지 전기차 43만대, 수소차 6만7000대를 보급할 계획도 밝혔다.

또한, 3대 플랫폼 경제에 총 1조5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8대 선도사업에도 총 3조6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연구개발 예산도 사상 최초로 20조원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같은 전통 주력 제조업에도 혁신의 옷을 입히겠다고도 강조했다. 스마트공장은 2014년까지 300여개에 불과했지만 올해 4000개를 포함해 2022년까지 3만개로 대폭 확대할 것이며, 스마트 산단도 올해 두 곳부터 시작해서 22년까지 총 열 곳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하

문 대통령은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의 발굴을 위해 규제혁신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한국형 규제샌드박스’가 신기술·신제품의 빠른 시장성 점검과 출시를 도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혁신성장’ 성과와 계획을 꽤 상세하게 열거했다. 그럼에도 그간 국민들의 상당수는 ‘혁신성장’ 성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이날 성과가 열거됐지만 자신과는 무관한 낯선 숫자처럼 들린 국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도 그간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에 대해 국민이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한 듯, “올해는 국민의 삶 속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성과를 보여야 합니다”고 역설했다.

국어사전을 보면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과정은 결코 용이하지 않을 터다.

하물며 국가 경제정책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혁신’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 그간 정부가 거둔 혁신성장의 성과도 적지않았다. 그럼에도 지금 일반 국민들이나 기업인들이 느끼는 한국 경제의 ‘혁신 체감도’는 매우 낮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왜일까? ‘파괴적 기술’의 대가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를 비롯해, 혁신과 경영 전략 및 관리 분야의 대가 3명이 쓴 ‘이노베이터 DNA’에서 참고할 만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대가 3명은 아마존, 애플, 구글 등의 CEO이자 세계 최고 혁신가들의 행동을 분석하며 일반 관리자와 구별되는 혁신적 기업가와 경영자가 지닌 다섯 가지 발견 스킬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노베이터 DNA’ 스킬을 키우는 방법과 함께, 어떻게 조직에 그 DNA를 주입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뤘다.

대가 3명은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프로세스’,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연구한 결과, 혁신적인 리더들은 발견 지향적 사람을 채용하고 훈련하고 보상하며 승진하도록 프로세스를 설계했다. 그리고 혁신이라는 것은 단지 R&D 부서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고 혁신을 추구하지만 위험 감수는 스마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의 확고한 철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크리스텐슨 교수 등은 혁신기업의 사례를 분석해 혁신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혁신이 직원 모두의 일이다’라는 철학을 정착시키려면 사람들이 현상태에 대해 소신을 밝힐 수 있게끔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연구자들이 ‘심리적 안전’이라 부르는 것으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환경이 조성되면 혁신은 자연스레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질문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발견 스킬을 발휘할 때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대로 실패한 혁신가의 사례도 들었는데, 직원의 성과를 평가절하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리더의 경우 등이다.

‘혁신은 직원 모두의 일’이라는 철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모든 직원에게 혁신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실제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하고, 혁신 활동을 개인 업무 고과에 구체적이고도 일관되게 반영하며, 혁신과 창조성, 호기심을 조직의 핵심 가치에 포함시키고 언행을 일치시키는 등의 조건들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직원들과 혁신의 가치를 공유하고 직원들에게 혁신할 마음이 우러나도록 하는 환경 조성이 혁신적인 리더들의 공통점이었다는 것이다.

국가 통치와 기업 경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혁신적인 정책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성과를 거둬야 할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고 남의 일처럼 느낀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없는지부터 찬찬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정부정책이 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세스와 철학을 확실히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국민이 그 철학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만약 미흡한 부분이나 잘못된 방향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노베이터 DNA’는 제시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는 국민의 삶 속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을 확실히 체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성과를 보여야 합니다”라고 ‘체감’과 ‘성과’를 강조했다.

지난 한 해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실업률 증가, 양극화 심화, 성장률 둔화 등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앞세웠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당초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우리 사회와 경제 곳곳에 깊은 주름을 남겼다. 새해에는 그간 우리 경제의 버팀목 구실을 했던 수출전선마저 빨간불이 들어왔다.

정부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규제샌드박스가 17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규제샌드박스는 기존 규제가 신기술과 신산업의 발목을 잡지않도록 하는 제도로, 이날부터 규제 신속확인·실증특례·임시허가 등 3종 제도가 시행된다.

앞으로 1년 후에 있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굳이 혁신성장의 성과를 열거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그 성과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그렇게 된다면 2019년 기해년은 한국경제가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전환한 기념비적인 해로 기억될 것이다. 

류수근 IT21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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