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 미세먼지가 이번 주 후반 다시 짙어지는 것도 모자라 이번 달 내내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란 기상청의 예보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난 14일, 비상저감조치 발령으로 공공기관들은 주차장을 폐쇄하고 차량 2부제를 시행했다.

미세먼지, 그리고 모래를 동반한 강력한 바람은 서쪽에 중국 대륙을 끼고 있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황사(黃砂)'와 동의어로 봐도 무방한 고유명사가 미국에도 존재한다.

일명 더스트볼(Dust Bowl)로 알려진 모래폭풍은 1930년대 북미 대륙을 강타했다. 미국의 곡창지대인 콜로라도 남동부, 캔자스 남서부, 텍사스, 그리고 뉴멕시코 북동부 지역에 큰 피해를 입힌 거대 모래폭풍은 당시 20만명이 넘는 이재민을 만들었다. 대공황(大恐慌, The Great Depression) 시기에 발생한 재앙 때문에 미국은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먼지 구름을 이룬 더스트볼은 세계적인 거장이 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에도 잘 묘사돼 있다. 놀란 감독이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에 2㎢가 넘는 토지를 구입해 옥수수를 직접 심어 1년을 키워낸 뒤 황사 장면을 촬영했다는 건 영화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놀란 감독은 더스트볼을 직접 겪은 사람들을 모아 영화 '인터스텔라' 속 인터뷰 장면을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더 더스트볼'(The Dust Bowl, 2012) 제작진에 직접 연락한 놀란 감독은 해당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체험기를 카메라에 다시 담는 철저함을 보였다.

시공을 넘나드는 미래를 그린 '인터스텔라'에서 역사적 재앙을 겪은 이들의 인터뷰를 딴 이유는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더스트볼이 다시 발생해 지구가 멸망했다고 설정했기 때문이다. 

인구폭탄의 영향은 아니었지만 더스트볼은 인재(人災)와 천재(天災)의 결합으로 발생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한 마구잡이식 경작으로 악명 높던 로키산 메뚜기(Locust)는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멸종을 맞았고, 대공황 당시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경작을 이어가면서 해당 지역에서는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여기에 이어진 극심한 가뭄은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1933년부터 1936년까지 해당 지역의 강수량이 연평균 500㎜를 밑돌면서 결국 더스트볼이란 재앙이 찾아왔다.

기상이변을 사람이 부른 재앙으로 보는 영화는 적지 않다.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는 이른바 소빙하기를 다룬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는 우리에게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허리까지 쌓인 눈과 뉴욕 지하철이 해일에 침수되는 장면은 대중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영화적 과장이 포함됐지만 2004년 개봉한 이 영화는 최근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로 재조명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같은 제작진이 참여해 만든 딘 데블린 감독의 영화 '지오스톰'(Geostorm, 2017)은 기후변화의 원인을 대놓고 인재라고 설정했다. 이 영화에는 전 세계 인공위성 시스템을 총합해 만든 지구 기상조절용 인공위성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전 지구적 재난을 막으려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담겼다.

무리한 설정과 클리셰의 남발로 혹평을 받았지만, 지구의 기상을 사람들이 직접 조절한다는 설정이 현실화된다면 수십 년 뒤에 '투모로우'처럼 재조명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적 상상력이 그대로 현실화된 경우는 왕왕 있다. 20년 전 세상을 등진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 1968)가 대표적이다. 앞서 언급한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이 작품의 오마주이기도 하다.

놀란 감독은 역사를 차용해 미래를 그려냈지만, 그가 존경한 큐브릭은 영화 한 편으로 역사를 예견했다. 

우주에 대한 완벽한 묘사는 실제 장면을 따라 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개봉 1년 뒤인 1969년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실제 우주에서 촬영된 지구의 모습은 큐브릭이 연출한 영화 속 모습과 소름 돋게 유사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키보드는 1975년에 처음 개발됐고 1981년이 되어서야 일반인들에게 보급됐다. 디스커버리호의 덩어리진 우주식(宇宙食)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이 섭취한 튜브로 짜먹는 초콜릿과 닮았다는 사실도 대중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큐브릭의 상상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인공지능 로봇 '사이먼'(CIMON)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첫 가동되면서 영화 속 '할 9000(HAL 9000)'은 50년 만에 현실화됐다.

미세먼지 마스크가 하루 종일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다. 기온의 상승으로 극지방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지구의 공멸을 부른 더스트볼이 다시 찾아오는 일은 영화적 상상에만 그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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