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는 일부 대기업 총수가 불참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 행사에 초청된 기업인은 모두 130여명이었다. 자산순위 25위 이내의 대기업과 업종별 안배를 기반으로 선정된 중견기업 관계자들이 대상이었다. 그런데 국내 굴지의 대기업 몇 군데가 초청 대상에 들지 못했으니 궁금증이 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대기업이면서 초청 대상에서 빠진 곳은 한진, 부영, 대림 세 곳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지난해 공시대상기업 자산 순위를 보면 이들 기업은 넉넉히 20위권 이내에 들어가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 총수가 초청 대상에서 누락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선정 주체인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부영은 오너가 재판에 회부돼 있다는 점으로 인해 대상에서 배제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머지 두 기업의 배제 사유였다. 한진과 대림이 초청 대상에서 빠진 주된 이유는 기업 갑질이었다. 대한항공을 품고 있는 한진의 경우 오너 일가의 다발적 갑질로, 대림은 이해욱 부회장의 운전기사 상습 폭행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들의 불참에 의문 부호가 붙게 된 이유는 또 있었다. 그 이유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행사 참석이었다. 이 부회장은 행사 당일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텀블러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등 참석 기업인 중에서도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재판에 회부돼 있다. 이 부회장은 법정구속에서 풀려나 있지만 뇌물죄로 항소심까지 유죄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다.

얼핏 보아 오락가락인 듯한 선정 기준에 기자들의 의문이 제기되자 대한상의는 현업에서 활동하는 기업인은 포함시키려 했고, 이 부회장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대통령과 만나고 북한도 가고, 올해 신년회에도 참석했으니 그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상의의 판단은 일반의 정서와도 대체로 일치한다. 법적 책임의 경중, 법원에서 내려질 형량의 많고 적음보다 시민들의 정서를 주요 잣대로 삼았다는 점이 그렇다. 핵심 요소는 위법성과는 별개일 수도 있는 잣대인 밉살스럽고 천박한 갑질이다.

이는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기업의 법적 책임 못지않게, 때론 그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고 소비자의 이성적 선택보다 감성적 판단이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소비 활동이 반드시 이성적 판단에 의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기업들의 큰 오산이다.

착한 소비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갑질’이란 한국어가 영문 알파벳 ‘GapJil’로 외국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기업이 주는 이미지는 국내 소비 활동의 주요 판단 기준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비이성적이라 나무랄 일도 아니다. 여기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일반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 청와대 행사는 갑질 기업은 사회와 공존·공생하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켜주었다. 동시에 기업과 대중 간 사회적 관계 형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일깨워주었다. 아직도 갑질을 내밀하게 즐기는 기업 관계자들이 있다면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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