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이 10% 하락할 경우 임대 가구(집주인)의 1.5%는 예·적금을 깨고 추가 대출을 받더라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주택 시장이 위축할 때에는 이 비중이 14.8%로 뛰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은행은 19일 '최근 전세 시장 상황 및 관련 영향 점검'이라는 보고서에서 "전셋값 10% 하락 시 전체 임대 가구의 1.5%인 3만2000가구는 금융자산 처분, 금융기관 차입으로도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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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2018년 통계청·금융감독원과 한은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약 211만 임대 가구를 대상으로 분석 작업을 벌인 결과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후속 세입자를 구해 전세 보증금 하락분만 임차인에게 내줘야 한다고 해도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얘기다.

부족 자금 규모는 크지는 않은 편이었다. 3만2000가구 중 71.5%는 2000만원 이하가 부족할 것으로 추정됐다. 2000만∼5000만원 부족은 21.6%, 5000만원 초과 부족은 6.9%로 분석됐다.

임대 가구의 대부분인 92.9%는 전셋값이 10% 하락하더라도 금융자산 처분으로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5.6%는 금융자산 처분만으론 부족해도 금융기관 차입을 받으면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후속 세입자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주택 시장이 경색할 경우엔 금융자산 처분, 금융기관 차입으로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가구 비중이 14.8%로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59.1%는 금융자산 처분으로, 26.1%는 금융자산 처분에 금융기관 차입을 하면 보증금을 임대인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주택 시장 상황을 볼 때 전셋값 10% 하락은 비현실적 가정은 아니다.

입주 물량 확대, 일부 지역 경기 부진, 그간 상승에 따른 조정 압력으로 올해 1∼2월 거래된 아파트 중 전셋값이 2년 전보다 하락한 곳은 52.0%였다. 그중 전셋값이 10∼20% 하락한 아파트는 14.9%, 30% 이상 떨어진 아파트는 4.7%로 나타났다.

다만 한은은 임대인의 재무 건전성, 임차인의 전세대출 건전성을 고려할 때 전셋값 조정에 따른 금융 시스템 리스크는 현재로서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임대 가구 중에선 고소득(소득 상위 40%) 비중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64.1%에 달했고 실물자산도 가구당 8억원으로 많은 편이었다.

금융자산, 실물자산을 합한 임대 가구의 총자산 대비 총부채(보증금 포함) 비율은 26.5%로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총자산보다 총부채가 많은 임대 가구는 0.6%에 그쳤다.

임차인 측면에서 보면 전세자금 대출은 작년 말 92조5000억원으로 파악됐으나 대출 규제 강화, 전셋값 하락 여파로 증가세가 최근 둔화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전세자금 대출 차주가 작년 3분기 말 기준 고신용(1∼3등급) 차주 비중이 81.9%로 높은 점, 취약차주 비중은 3.8%로 낮다는 점도 전세자금 대출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이유로 꼽혔다.

그러나 위험성은 커지고 있다. 임대 가구의 보증금 반환 능력은 약화하는 모습이다.

2012년 3월∼작년 3월 임대 가구의 보증금은 연평균 5.2% 상승했으나 금융자산은 3.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차입이나 갭 투자로 부동산을 사들인 탓에 금융부채, 실물자산은 많이 늘었지만 유동성과 관련 있는 금융자산은 크게 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임대 가구의 금융자산 대비 보증금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3월 78.0%에 달했다.

특히 금융부채를 보유한 임대 가구의 경우 이 비율이 91.6%로 보증금이 금융자산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부채 보유 임대 가구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SR)은 40.6%, 연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264.6%로 일반 가구(31.8%, 183.0%)를 상회하기도 했다.

전세자금 대출에서 최근 보증사고가 늘어나며 보증기관의 대위 변제가 늘고 있는 점도 잠재 리스크로 꼽혔다.

한은은 "전셋값이 큰 폭으로 하락한 지역이나 부채 레버리지가 높은 임대 주택 등을 중심으로 보증금 반환 관련 리스크가 증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경우 전세 매매시장 위축, 금융기관 대출 건전성 저하, 보증기관 신용리스크 증대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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