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사인은 지병이었던 폐질환이었다.

조 회장의 사망은 갑작스러운 뉴스였다. 조 회장 본인을 포함해 부인과 두 딸 등 일가가 횡령 및 배임, 각종 갑질 등으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가운데 느닷없이 터진 일이었다.

조 회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로 기소됐다.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지난해 ‘물컵 갑질’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이 갑질 사건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조씨 일가에 대한 여론을 최악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작용을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후 줄줄이 드러난 조 회장 일가의 각종 갑질은 위법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국민적 공분을 자극했다. 한진가를 향한 공분은 오너 일가의 숨은 비위 사실을 들춰내는 촉매제가 됐고, 조 회장 일가의 각종 갑질은 마침내 법적 시비에 휘말렸다.

사태는 여기에 끝나지 않았다. 한진을 향한 국민적 분노는 국민연금공단이 대한항공에 대해 스튜어드십코드를 행사하는 단계로까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조 회장은 한진그룹의 핵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마저 상실했다.

조 회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이같은 일련의 과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달 대한항공 정기주총에서 국민연금의 반대 등으로 인해 경영권을 상실한 것이 조 회장의 심기를 크게 망가뜨렸을 가능성이 크다. 조 회장의 직접적 사인으로 알려진 폐섬유화증이 스트레스로 인해 급격히 악화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의 예상치 못한 사망은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를 야기했다. 재계 및 시장의 최대 관심은 조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온전히 승계할 수 있을지에 모아져 있다.

대체적인 관측은 조 사장이 어떤 식으로든 경영권을 승계하리라는데 모아져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 또한 만만치않은 게 사실이다.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엄청난 규모의 상속세다. 조 회장 지분을 인수하는데 최소 2000억 정도의 현금자산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상속 규모가 30억원 이상이면 상속세율은 50%다. 여기에 최대주주의 지분을 상속받을 때 적용되는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붙으면 세율은 60%선이 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상속될 주식의 가치를 평가할 때 할증되는 가치인데 그 폭이 20~30%선이다. 조 회장의 경우 지분이 50% 미만이기 때문에 20%의 할증률이 적용된다.

현재 조 회장의 재산은 얼마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드러난 것만 따져보면 한진칼 지분 17.84%(약 3221억원)와 (주)한진 지분 6.87%(약 348억원), 대한항공 지분 2.4%(약 9억원) 등이다. 이밖에도 규모를 알기 어려운 현금자산과 부동산, 비상장 주식 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대략 2000억원의 상속세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참고로 한진그룹은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정점에 위치한 채 대한항공과 (주)한진을 통해 각종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조 회장 일가는 한진칼의 지분 28.8%를 확보하고 있다. 각자의 지분율은 조 회장 17.84%, 조원태 사장 2.34%, 조현아 전 부사장 2.31%, 조현민 전 전무 2.30% 등이다.

한진칼의 2, 3대 주주는 12.8%를 보유한 사모펀드 KCGI와 6.7%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나머지 지분은 외국인과 소액주주들이 나누어 보유하고 있다.

이상의 구도로 볼 때 오너가의 장남인 조원태 사장이 경영권을 안전하게 승계하려면 조 회장의 주식을 물려받는 것은 물론 조현아·조현민 자매의 지분을 우호지분으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물려받을 주식의 절반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하고 나면 일가 전체의 지분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재계 등에서는 조 사장이 일가의 지분율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현금 마련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주식담보대출은 평가액의 50%까지 가능한 만큼 이는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나머지 계열사 지분 매각, 배당 확대 등의 방안이 병행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2000억여원의 현금 마련이 그래도 버거울 경우 상속세 분할납부 카드를 택할 수도 있다. 이번의 경우처럼 액수가 크다면 상속세는 5년 분할 납부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의 과정이 계획대로 이뤄진다 해서 무조건 일이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조 회장 일가 내부의 분란이 일어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조원태 사장의 순탄한 경영권 승계는 조현아, 조현민 자매 등 오너가의 의기투합을 전제로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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