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 사태가 코오롱그룹의 기반을 흔드는 빅 이슈로 등장했다.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사태의 성격은 코오롱의 기업윤리를 훼손하는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실 코오롱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크게 훼손됐다고 보는 게 옳다. 이번 사태가 코오롱에 유리한 쪽으로 결말지어진다 해도 진실 공방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여서이다. 지금 시중의 최대 관심사는 ‘유전자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성분이 당초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보고된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코오롱생명과학(코오롱생과)이 정말로 몰랐는지 여부다. 성분 차이가 인보사의 효능에 영향을 미치는지, 바뀐 성분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는지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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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 [사진 = 연합뉴스]

요는 코오롱생과가 인보사에 엉뚱한 성분이 포함돼 있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진실을 숨긴 채 식약처에서 국내 판매 승인을 받았는지 여부다. 이 같은 궁금증은 인보사 사태 전개 과정상의 부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비롯됐다.

사태의 쟁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시점에 주목해야 한다. 2017년 3월과 그 해 7월이 그 시점들이다. 그 해 7월은 코오롱생과가 식약처로부터 인보사 제품의 국내판매 승인을 받은 시점이다. 그런데 최근 코오롱생과와 계약 관련 소송을 벌이던 일본의 한 회사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판매승인 4개월 전인 2017년 3월 인보사 제조사인 코오롱티슈진(코오롱생과의 미국 자회사)이 인보사에 엉뚱한 성분이 포함돼 있음을 지적한 STR 검사(유전학적 계통검사) 결과를 제공받았다는 게 그것이었다. 실험을 실시한 뒤 결과를 통보한 곳은 위탁생산업체인 ‘론자’였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3일 코오롱생과의 공시를 통해 드러났다. 공시는 ‘코오롱티슈진이 △인보사 성분 일부가 본래의 것과 다르다는 것 △생산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생산한 사실이 있다는 것 등을 통보받았음을 확인했다’라는 줄거리를 담고 있었다.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하자면, 1액과 2액으로 구성된 인보사의 2액에 원래 들어가야 할 연골유래세포가 아니라 신장유래세포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인보사 성분 일부가 뒤바뀐 사실을 코오롱티슈진과 코오롱생과가 2017년 3월에 이미 알았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을 자극했다. 나아가 올해 2월에야 그 같은 사실을 알았다는 코오롱생과의 기존 주장이 거짓말이었을 가능성을 추론케 했다.

이 일로 불똥은 최근 코오롱을 떠난 이웅열 전 회장에게까지 튀기 시작했다. 이 전 회장의 사퇴 시점이 절묘하게도 인보사 사태 촉발 직전이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1월 28일 코오롱 내부행사 자리를 빌려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코오롱그룹 회장직은 물론 계열사 주요 보직을 모두 내려놓고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위함이라는 것이 사퇴의 변이었다. 그룹 경영상 특별한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사퇴 선언을 두고 다소 엉뚱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체적 평은 긍정적이었다. ‘신선한 충격’이란 반응과 함께 이 전 회장을 범상치 않은 인물로 재평가하는 기류까지 형성됐다. 재벌가 구성원들의 각종 갑질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분위기가 주는 기저효과까지 가세한 결과였다.

하지만 곧바로 인보사 사태가 불거지자 이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180도 돌변하기 시작했다. 퇴임하면서 받은 임금과 퇴직금이 450억 이상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면서 ‘먹튀’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타났다. 이 일은 지난 2월 있었던 이 전 회장 기소와 맞물려 그에 대한 평가를 더욱 고약스럽게 만들었다. 이 전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계열사의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한 뒤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특히 인보사 사태는 애먼 주식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겼다. 2개월 전까지만 해도 9만원을 오르내리던 코오롱생과의 주가는 7일 오후 현재 3만원대로 추락했다. 그뿐인가. 거액을 들여 인보사 치료를 받은 수천의 관절염 환자들도 혹시 있을지 모를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에서는 이 전 회장의 퇴임 배경을 수사하라는 목소리까지 제기되고 있다. 조만간 큰 화가 닥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새로운 도전’으로 치장한 채 위기 탈출을 한 것이라는 시각이 반영된 주장이다.

이 전 회장은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때 불과 수시간만인 꼭두새벽에 현장에 찾아가 최대한의 사죄를 표명하고 사고 수습을 진두지휘함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사재를 털어가며 보상에 적극 나선 점도 사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주식 차명 보유와 인보사 사태는 이 전 회장의 실체에 대해 연이어 의문 부호를 남겼다.

이제 공은 이 전 회장에게로 넘어갔다. ‘먹튀’ 시비가 단순한 오비이락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당당히 제시된 의문에 답하며 정면 돌파하는 게 정도일 듯하다. 지금 코오롱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그가 진정 ‘영원한 청년’인지 아닌지를 보여줄 중요한 시험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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