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쏟아져 나온 수많은 뉴스 중 화제성 이슈로 가장 크게 눈길을 끈 것은 신동빈 롯데회장의 백악관 방문이었다. 방문 장소도 그냥 백악관이 아니라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였다. 신 회장은 그곳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통령 전용인 ‘결단의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그 모습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한 글을 통해 고스란히 공개됐다.

일개(?) 외국 기업인이 소련 붕괴 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의 대통령 집무실로 초대돼 담소한 것은 그 자체로 큰 뉴스가 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한국 기업인이 오벌 오피스로 초대되기는 신 회장이 처음이었다. 웬만한 국가의 정상도 받기 어려운 최고의 대접을 신 회장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백악관 오벌 오피스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담소하고 있다. [사진 =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신동빈 롯데 회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아 담소하고 있다. [사진 =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캡처]

기자를 더욱 의아스럽게 만든 것은 신 회장이 누린 대접의 배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글에서 밝혔듯이 롯데가 미국에 31억 달러를 투자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신 회장을 집무실로 불러 최고의 친근함을 과시한 것이었다.

사실 우리 돈 3조7000억원 정도에 해당하는 31억 달러는 미국 같은 큰 나라에 대한 투자 치고는 대단한 액수라 할 수 없다. 장기 계획이긴 하지만 지난 달 삼성전자가 ‘반도체 비전 2030’ 계획과 함께 공개한 국내 투자금 133조원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물론 트럼프 나름으론 의미의 크기가 다를 수 있다. 자신이 각별히 관심 쏟아온 에너지 분야와 관련이 있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투자유치 노력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앞섰을 수 있다. 대중(對中) 관세전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미국 기업들을 향해 국내 투자를 통해 난관을 풀어가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경이 무엇이든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는 투자 유치를 자극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주가 지수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한다는 느낌을 줄 만큼 민감성을 드러내는 그의 평소 행위도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같은 행동들은 경제 하나만은 확실히 살려놓겠다는 확고한 목표의식으로 귀결된다.

다소 객쩍고 우스꽝스럽긴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일련의 행동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대통령이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것을 나무랄 국민이 있을 리도 없다.

트럼프의 행위에 대해 마냥 부러움을 느낀 것과 달리, 롯데의 미국 투자에 대한 기자의 소회는 묘하게 얽혀들었다. 분명 박수를 쳐야 할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씁쓸함 또는 텁텁함이 여운처럼 길게 남는 느낌이었다.

롯데케미칼이 루이지애나주에 설립한 석유화학공장은 롯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승부수다.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려는 것이니 열심히 응원해 주어야 할 일이다. 투자처가 미국이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국내에서 공장을 세우면 에틸엔 생산을 위해 비싼 나프타를 원료로 써야 하지만, 미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절반 값의 원료인 셰일가스를 에틸렌 생산의 원료로 쓸 수 있어서이다. 셰일가스는 미국 땅 지하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국내에 공장을 지은 뒤 셰일가스를 수입해 쓰는 방법도 있지만, 여기엔 막대한 원료 운송비 지출이 수반되는 문제가 있다. 부피가 큰 셰일가스는 운송하기 위해 액화·냉각 등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뿐인가 ‘석유화학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은 해당 분야의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손쉽게 판매될 수 있다. 나아가 롯데케미칼은 미국 시장을 토대로 글로벌 석유화학기업으로 성장할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투자 유치 노력 덕분에 이전보다 낮아진 법인세 등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덤이다.

결국 롯데케미칼에게 미국은 약속의 땅이 될 가능성을 지닌 곳이다.

하지만 롯데의 대미 투자는 한편으론 우리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서 공장을 가동한다는 것은 그로 인한 수익을 모두 미국에 안겨준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공장 운영에서 비롯되는 세금 수입도, 고용 창출 효과도 모두 미국의 몫이 된다. 심지어 롯데케미칼 루이지애나 공장이 생산해내는 모든 가치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으로 집계된다. 현지 공장의 생산 활동이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성장률 견인에 기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외에 공장을 지으며 시설투자를 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반면 외국 기업의 국내투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 같은 흐름을 바꾸어놓을 조치가 더욱 아쉬워진 요즘이다. 롯데의 대미 투자를 축하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아려오는 이유다.

김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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