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쏘카’ 이재웅 대표가 모빌리티 서비스 문제를 두고 한바탕 언쟁을 벌였다. 모든 다툼엔 나름의 논리가 있는 만큼, 언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대개의 언쟁엔 양시양비론적 시각이 적용될 여지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때론 양시양비론이 백해무익한 경우도 있다. 이번 언쟁이 그런 유에 해당한다. 언쟁 중 한쪽이 명백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 일방을 콕 찍어 나무라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건의 경우 최 위원장이 전적으로 잘못했다. 자신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몰이해가 잘못을 유발한 원인이다. 관전자 사이에서 “갑질 발언”이란 비난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이다. 같은 이유로 “군림”, “전근대적 횡포”(카이스트 경영학과 이병태 교수)란 비난도 결코 과하다 할 수 없다. 필자 역시 최 위원장의 문제의 발언을 처음 접한 뒤 눈과 귀를 의심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문제의 발언은 지난 22일 한 금융계 행사 직후 최 위원장이 기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발언 전반을 살펴보니 작심하고 준비해서 한 말인 듯했다.

요지는 혁신 사업가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것도 좋지만, 혁신 과정에서 필히 생겨나는 낙오자들을 보듬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웅 대표는 정책 집행자들을 혁신의지가 부족하다고 비난하고, 택시기사들을 향해서는 거친 언사를 퍼붓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어 최 위원장은 “이기적이고 너무 무례한 언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특히 문제를 키우며 논란을 확산시킨 것은 “이기적”, “무례” 등의 도발적 표현이었다. 이재웅 대표도 이 표현들에 대해 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일차로 페이스북을 통해 “출마하시려나”라는 냉소적 표현으로 응수했다. 이후엔 해당 글에 붙은 댓글에 답변하면서 “주관부서도 아닌 부서의 장관이 시민에게 무례, 이기적이라는 말을 기자간담회에서 하는 것은 너무 불쾌하다”고 적었다.

이재웅 쏘카 대표. [사진 = 연합뉴스]
이재웅 쏘카 대표. [사진 = 연합뉴스]

시비를 따지기 이전에 “이기적” “무례” 등의 표현부터가 심히 잘못됐다. 이 표현들은 이 대표뿐 아니라 ‘의식 있는’ 많은 관전자들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 공무원이 감히 시민을 향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었던 탓이다.

민주사회에서 공무원은 공복(公僕)이다.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공복은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심부름꾼이란 뜻이다. 백성을 기르고 가르치고 다스린다는 의미의, 왕조시대의 목민관(牧民官)과는 개념이 다르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관존민비 사고가 풍미하던 시절의 목민관이 우매한 백성을 상대로 했음직한 것이었다.

자신의 역할과 입장에 대한 최 위원장의 몰이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이,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크게 착각하고 있다는 것 역시 그가 저지른 중요한 잘못의 하나다.

예의 도발적 표현을 제외하고 발언 내용만 놓고 보면 모두 맞는 말이다. 문제는 그 같은 발언의 주체가 정부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혁신 시대에 그 흐름과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을 보듬고 지원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그 일을 마치 남의 일인 양 이야기하면서 혁신가를 꾸짖으려는 태도는 고위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혁신가가 앞만 보며 달려가려 하는 것도, 기존의 틀에 적응해온 이들이 혁신 흐름에 저항하려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둘 사이의 충돌이야말로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정부의 역할과 실력이다. 양자의 이해를 조정하면서 통과의례에 수반되는 사회적 고통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항차 이재웅 대표 등 혁신가들이 정부보다 적극적으로 택시 기사들의 고통을 덜어줄 대안 마련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이치가 이러하거늘, 고위 공직자가 혁신가를 나무라며 네탓 타령을 했으니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게 다가 아니다. 낙오자들을 보듬는 한편으로 혁신가들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도록 돕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게 곧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다.

오늘날 산업 분야의 혁신은 빛의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뭇거리다간 우리 사회 전체가 낙오자가 될 수 있다. 모빌리티 혁신의 한 영역인 차량 공유도 마찬가지다. 차량과 정보기술(IT)의 협업을 기반으로 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는 이미 세계적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극심한 내분으로 인해 걸음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갈라파고스처럼 외부 세계의 흐름을 도외시한 채 집안싸움에만 매몰돼 있는 사이 글로벌 경쟁자들은 각종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으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는 IT와의 결합으로 인해 현대사회 시민들의 동선과 시간대별 체류 장소 및 행동양식, 생활상의 주기적 특성, 나아가 성별·연령대별·직업별 생활상, 분류 기준별 핫플레이스 등 온갖 데이터를 누적해갈 수 있다. 이들 데이터는 새로운 산업의 영역을 창출하는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혁신이 혁신을 낳으며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최 위원장과 이 대표의 논쟁을 유발한 차량 공유 서비스 ‘타다’는 지금도 불법 시비에 휘말려 있다. 11~15인승 승합차에 한해 운전자 딸린 차를 대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에 부합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위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서이다. 시행령의 취지는 사실상의 택시영업이 아니라 가족 단위 등 소규모 단체관광을 지원하는데 있다는 게 그 같은 주장의 배경이다.

‘타다’가 법 정신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두고는 논란이 일 수 있다. 확실한 판단은 법정에서 내려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규제 샌드박스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명백한 불법이 아닌 만큼 우리 사회 전체가 일단 허용하고 볼 일이다.

그런 다음 법적으로 미비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게 정도다. 시대에 맞지 않는 법 조항은 재빨리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게 진짜 적폐 청산이다. 낡은 법 조항 탓에 불법 타령이 난무한다면 혁신이 발붙일 자리는 자꾸만 좁아진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6월 우리 나라 도로에는 2인승 ‘트위지’가 첫선을 보였다. 치킨 배달용으로 르노가 개발한 초소형 전기차인 ‘트위지’는 법적으로 족보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한동안 국내에서 시판되지 못했었다. 관련법규 상 자동차인지 원동기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트위지’는 제법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꿎게 2년여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들끓자 결국 당국이 시행령 손질에 나선 덕분에 트위지는 도로 위를 달리게 됐고,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타다도 비슷한 케이스다. 합법성에 대한 정리조차 깔끔히 이뤄지지 않은 채 정부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법 논란을 정리해주어도 시원찮은 마당에 최 위원장의 무례막심한 돌발 행동까지 나왔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혁신이 왜 어려운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재웅 대표를 비롯해 이찬진 포티스 대표,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등 유명짜한 혁신가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생산적 토론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보는 정부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나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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