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포항제철소와 현대제철 등 국내 굴지의 철강제조업체들이 관할 광역 지자체로부터 줄줄이 조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고로와 연결된 굴뚝을 통해 오염물질을 배출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굴뚝 꼭대기에 달린 ‘블리더’란 이름의 안전밸브를 개방함으로써 대기 중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했다는 것이다.

고로는 제철소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현재 포스코가 9개, 현대제철이 3개를 운용하고 있다. 두 업체는 각각 고로 정비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블리더를 개방했다가 철퇴를 맞았다. 블리더는 고로 정비나 보수작업 등을 할 때 내부 압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개방된다. 그러지 않을 경우 고로 폭발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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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처분이 내려지자 해당 업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처분 내용이 과도한데다 현재로서는 지적 사항을 해소할 대안도 없다는 게 그 이유다.

해당 업체의 구구절절한 해명이 아니더라도 이번 조치는 무모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행정처분의 취지나 효과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기계적으로 내려진 조치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조치를 두고 행정처분의 목적과 취지의 한도를 벗어났다는 비판이 적지않게 제기되고 있다.

해당 업체와 업계에 따르면 고로, 즉 쇠를 제련하는 용광로를 10일 동안 가동하지 말라는 것은 사실상 공장을 폐쇄하라는 것과 같다. 고로의 특성상 4일만 가동을 멈춰도 그 속의 내용물이 그대로 굳어져 재가동할 때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경우에 따라 고로 자체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재가동에 3개월이 걸린다는 최선의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열연제품 가격을 감안할 때 8000억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게 현대제철 측의 추산이다. 고로를 다시 만들게 돼 2년 동안 가동을 못하면 손실액은 8조원으로 불어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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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에 과장이 깃들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행정처분이 합리적 수준을 넘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행정처분의 불합리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은 또 있다. 행정처분 10일의 여파를 고스란히 감내한다 한들 현재의 기술 수준 하에서는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비작업 중 블리더를 개방하지 않으면 고로 폭발 등의 위험을 해소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은 “블리더를 개방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선진 외국의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라 한다.

블리더 개방이 갑자기 사회문제가 된 것은 미세먼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관련이 있다. 이전에 별다른 저항 없이 이어지던 행위가 새삼 논란거리로 부상한 것이다.

논란의 역사가 짧은 만큼 아직 블리더 개방이 미세먼지를 얼마나 배출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배출되는 물질 대부분이 수증기이지만 그 중에는 미세먼지도 포함돼 있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지자체의 행정처분은 유예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당장 효력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같은 처분을 받은 광양제철소도 아직 전남도와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다.

제철소들의 블리더 개방은 최근 대기오염물질 자가측정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거짓 신고를 일삼은 여수산업단지 석유화학업체들의 행위와는 질이 다르다. 그 불가피성에 대한 참작의 여지가 남아 있다.

따라서 무작정 행정처분의 칼을 휘두르기보다 중앙 및 지방정부가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블리더 개방시 방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이 어느 정도인지 계측하는 일이다. 이후 문제가 있다면 해결 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산업화하려는 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나가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고 빈대용 살충제 개발에 적극 나서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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