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의 시행착오가 가져다 준 학습효과 덕분일까.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방식에 미세하나마 변화의 기미가 엿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기적으로도 청와대 경제라인 교체와 맞물려 있어 변화 흐름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있다.

정부의 입장 변화를 예고하는 징후들은 한 둘이 아니다. 우선은 지난 3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기류 변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날 발표된 정책방향에는 특히 기존의 대기업 증세 정책에 반하는 내용이 들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인 것이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시설 투자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에도 2%까지 높여준다는 내용이었다. 기존의 대기업 세액 공제율은 1%였다.

고작 1%포인트의 세액공제 혜택을 더해준다고 대기업의 국내 시설투자가 크게 활성화될 리 있겠느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그 속에 담긴 방향 전환의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이는 정책방향을 앞두고 대한상공회의소(상의)가 정부에 요구한 내용을 일부 수용한 결과다. 상의는 앞서 정부에 전달한 건의문을 통해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전향적인 세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의는 건의문에 생산성 향상 및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은 최근 들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포함시켰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 = 연합뉴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 = 연합뉴스]

경제정책의 기본 골격을 관리할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책 집행을 리드할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유연해진 자세도 눈길을 모은다.

김 실장은 얼마 전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이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상조가 정책실장으로 가면 왜 기업들의 기를 꺾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 기업인들과 언제든 만날 용의가 있음을 강조했다. 대기업에게는 간섭과 압박으로 여겨질 수 있는 ‘공정’ 개념을 제도화하고 현장에서 집행해오며 쌓아온 기존 이미지를 의심케 할 만한 발언이었다. 실제로 김 실장은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기 위해 일정을 조율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명목상 경제사령탑 역할을 수행중인 홍남기 부총리의 움직임은 더욱 구체적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청사진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 4일 상의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정책 방향을 공유하는 한편 업계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달 말 발표될 세제 개편안에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의지도 내비쳤다.

이 자리에서 박용만 상의 회장은 전날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에 긍정적 내용이 많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좀 더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박 회장은 이 자리에서도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각별히 강조했다. 정부가 개별 규제들에 대해 일일이 ‘관문 심사’를 벌이고 있는 관행을 지적하며 그 자체가 기업들에게는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박 회장이 정부를 향해 규제 해소를 요구한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그는 홍 부총리를 만나기 하루 전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난마처럼 얽힌 규제의 폐해를 강조했다. “신산업은 규제의 정글 속에 갇히다 보니 일을 시작하고 벌이는 자체가 큰 성취일 정도”라는 것이었다.

박 회장의 말처럼 기업들의 가장 절실한 희망은 규제 해소다. 투자를 하고자 해도 각종 규제로 인해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게 기업인들의 하소연이다. 예를 들어 신성장 사업과 관련해 투자를 할 경우 제도적으로는 5~10%의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요건이 까다롭다 보니 사실상 제도 자체가 사문화되어버렸다는 게 기업인들의 항변이다.

기업인들은 또 문재인 정부가 ‘큰 정부’를 지향하면서 공무원 수를 늘릴수록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정부가 보여준 변화 기미는 일단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만, 기업인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더 과감하게 규제를 혁파하고 세제를 개편함으로써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국내로 되돌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정부가 그토록 갈망하는 실질적 고용 증대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투자가 이뤄져야 생산이 늘고 생산이 늘어야 고용이 늘어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전체 파이를 키워야 더 많은 사람이 나눠먹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달리 표현하면 성장 엔진을 달궈 속히 경제성장률은 끌어올리는 일이 급선무란 얘기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팍팍하기만 하다. KB증권 장재철 연구원은 5일 일본의 수출규제로 반도체 수출이 10% 줄어들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6%포인트 줄어들 것이란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이는 반도체 수출이 우리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라는 점을 전제로 산출한 결과다.

현실 여건을 보면 이번에 정부가 새로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 2.4~2.5%도 단순한 ‘희망사항’일 가능성이 크다. 홍 부총리 스스로 밝혔듯이 제시된 수치는 정책효과까지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엔 일본과의 무역전쟁 본격화에 따른 변수도 포함되지 않았다.

현실이 제시하는 답안은 오직 하나다. 그 답은 앞서 거론했듯이 투자와 생산을 늘려 전체 파이 규모를 키우는 일이다. 그 이상의 묘수는 어디에도 없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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