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향해 두 번 째 공격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진작부터 이 같은 가능성을 거론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도 일본 현지의 동태가 심상치 않음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코트라 도쿄무역관이 5일자 ‘해외시장뉴스’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세 가지를 골라 수출 규제를 가한데 이어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아예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화이트국가는 일본으로부터 안보상 민감한 제품이나 물질을 수입한 뒤에 해당 물건을 불량국가 등으로 유출할 위험성이 없다고 일본이 인정한 국가를 지칭한다.

도쿄무역관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화이트국가 리스트엔 한국과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27개국이 포함돼 있다. 이들 외에 아르헨티나·호주·오스트리아·벨기에·불가리아·캐나다·체코·덴마크·핀란드·그리스·헝가리·아일랜드·이탈리아·룩셈부르크·네덜란드·뉴질랜드·노르웨이·폴란드·포르투갈·스페인·스웨덴·스위스 등 22개 국가도 화이트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 = EPA/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 = EPA/연합뉴스]

그런데 현재 일본은 이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본이 수출 규제의 강도를 높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화이트국가 명단에서의 제외는 한국이 일본의 안보우방국이 아님을 공식화하면서, 그 사실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동북아 안보를 위해 한·미·일이 굳건히 유지해온 공조 체제가 파괴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아도 한·미·일 공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취임과 함께 한결 취약해진 모습을 보여온 측면이 있다.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정부의 행동은 극단 상황을 향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이달 24일을 기한으로 정한 뒤 전자정부종합창구(https://search.e-gov.go.jp/servlet/Public)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접수한다.

도쿄무역관은 일본 경제산업성의 의견을 인용,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경우 다음 달 중엔 최종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 국내 여론의 향배에 따라 새달부터는 한국이 화이트국가 명단에서 누락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앞서 일본 정부는 자국 기업들이 한국으로 수출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세 가지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4일부터 불화폴리이미드, 레지스트, 불화수소를 지정한 뒤 이들 품목의 한국으로의 수출과 관련 제조기술 이전을 규제했다.

[그래픽 = 코트라 도쿄무역관 제공]
[그래픽 = 코트라 도쿄무역관 제공]

규제 방식은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에 대해서는 기존의 포괄수출허가가 아니라 개별 수출허가를 적용하는 것이었다. 건별로 일본기업으로부터 수출 신청을 받은 뒤 최대 90일의 심사를 진행해 수출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위의 3개 소재에 한해 일차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이들 세 개 품목을 선정한 행위에서는 야비하다 싶을 정도의 교묘한 측면이 엿보인다. 알려져 있다시피 해당 품목들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작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제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것들이다. 대상은 제품을 세척하는 재료(불화수소)이거나 디스플레이 겉면을 덮는 얇은 필름(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표면처리용 물질(레지스트) 등이다.

이들 소재를 선택함으로써 수출 기업들도 손실을 입게 되지만 일본 전체로 보면 피해 규모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은 생산 차질로 인해 큰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이 바로 일본 정부가 세 가지 소재를 선택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선전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아베 총리는 연일 한국 정부가 신뢰를 저버리는 한편 국제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비난하면서 동시에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 말하는 국제법 위배란 한·일 두 나라가 이미 청구권협상을 타결짓고 보상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일본 기업들을 향해 징용에 대해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일본 지도층 인사로부터 한국이 안보 관련 물품을 북한으로 유출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만한 억지 발언까지 나왔다. 하기우다 고이치 일본 자민당 간사장대행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4일 자국 방송에 출연해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사건이 발견됐다”고 전제한 뒤 “이런 일에 대해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정말로 한국을 화이트국가 명단에서 제외할 지는 미지수다. 도쿄무역관도 지적하고 있듯이 일본 내 여론 향배가 일본 정부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행히 지금 일본 언론들의 보도 기류는 산케이 등 극우 보수지를 제외하곤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의 대응도 보다 치밀해질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 등이 지적하고 있듯이, 지나친 감정 대응은 자제하면서 실리를 취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수 전문가의 조언처럼 외교적 물밑대화 진행과 함께 오는 21일의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서 대응책을 강화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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