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 규제를 가하면서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가 ‘캐치올 규제’의 미비다. 우리나라의 캐치올 규제가 촘촘하지 못해 대량살상무기 제작에 사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가 위험한 나라로 흘러들 수 있다는 게 일본 측 주장이다.

일본이 명분 없는 행동을 하다 보니 수출 규제 이유를 두고 자기들끼리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고 같은 사람의 목소리도 일관성 없이 나오고 있지만, 캐치올 규제에 대한 목소리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가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판결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짐작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공표하면 수출 규제를 정치 보복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다 보니, 엉뚱하게 캐치올 규제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캐치올 규제란 무엇일까. 캐치올(Catch All)은 ‘모두 움켜쥔다’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다. 여기에 규제란 말이 붙어 캐치올 규제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인다. 풀이하자면 전략물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모든 물자(All)에 대해 살펴보면서 무기 제조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출을 통제하는 제도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일선에서 이끌고 있는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사진 = EPA/연합뉴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일선에서 이끌고 있는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 [사진 = EPA/연합뉴스]

결국 일본은 우리가 수출통제 제도를 치밀하게 운용하지 못함으로써 북한이나 이란 등 위험한 지역으로 무기 제조에 쓰일 일본산 물품이 흘러들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주장이 억지라고 일축하면서 오히려 우리가 더 확실히 캐치올 규제를 이행하고 있다고 맞선다. 과연 어느 쪽 주장이 옳은 것일까? 정답은 ‘한국의 주장이 맞다’이다.

현재 두 나라는 공히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 원칙에 입각해 캐치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란 바세나르체제(재래식무기 관련), 핵공급국가그룹(핵무기 관련), 미사일기술통제체제(미사일 관련), 호주그룹(생화학무기 관련) 등을 지칭한다. 이들 체제는 각 분야별로 무기제조와 관련된 물질이나 기술·장비 등이 위험 국가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통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일본도 이에 따라 관련 법령을 손질한 뒤 안전보장무역관리제도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리스트 규제와 캐치올 규제를 병행해 운용하고 있다. 한국도 같은 취지의 제도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적 장치 마련 단계에서부터 차이가 엿보인다. 한국이 대외무역법에 근거 조항을 두고 있는 반면 일본은 하위 법령인 정령(우리의 시행령에 해당)을 근거로 캐치올 규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번에 일본이 한국행 특정 품목에 대한 리스트규제를 강화하고,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해 캐치올 규제를 가하려는 것도 결국 정령 개정과 관련돼 있다. 일본은 이달 24일까지 국내 여론을 수렴한 뒤 각의를 거쳐 정령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지난 12일 일본 경제산업성 별관에서 마주 앉은 양국 협상 대표단. 오른쪽이 한국 대표단이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2일 일본 경제산업성 별관에서 마주 앉은 양국 협상 대표단. 오른쪽이 한국 대표단이다. [사진 = 연합뉴스]

일본과 달리 우리는 시행령이 아니라 입법부 의결을 거친 대외무역법 조항을 근거로 캐치올 규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전략물자의 고시 및 수출허가 등’을 규정한 동법 19조가 해당 법조항이다. 우리는 이를 근거로 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전략물자·기술 수출입 통합공고’를 통해 수출 물자를 통제하고 있다.

법적 안정성이 강화돼 있는 것에 더해 한국은 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는 모든 물자에 대해 수출 업자에게 보고 의무를 지우고 있다. 보고 대상은 산업부 장관이다. 반면 일본은 화이트국가 리스트에 올라 있는 국가로 수출되는 물품에 대해서는 전략물자라 하더라도 경제산업성 보고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 우리는 수출관리체제에서 일본보다 엄격한 기준을 세워두고 있고, 이행에서도 철저를 기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을 향해 두 나라의 수출관리체제에 대한 검증을 제3국 또는 제3기관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 같은 현실을 토대로 한 자신감의 발로라 평가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의 이 같은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객관적 평가에 응해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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