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통과가 기약 없이 미뤄지자 야당을 압박하는 한편 홍보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가장 다급하게 움직이는 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다.

그는 정부가 추경안을 제출한지 만 세 달을 막 넘긴 시점인 24일 언론에 추경안 통과 필요성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같은 날 홍 부총리는 국회를 방문해 3당 원내대표를 만난 뒤 추경안 통과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제1야당 원내대표의 경우 미리 약속을 잡는데 실패하자 무작정 찾아가 호소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그로 인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무례’라는 단어까지 동원해가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홍 부총리의 행보를 두고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경제사령탑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나 원내대표의 질타성 불만 표현은 오히려 홍 부총리의 다급한 심정을 돋보이게 해주는 구실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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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타협의 예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당의 일방적 몰아붙이기 행태 또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임되더라도 여론의 동요가 거의 없을 법할 각료에 대한 해임건의안 상정조차 거부하며 자신들의 요구만 앞세우는 여당이 한국당에는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일본의 수출 규제 파동이 인 뒤부터는 여당이 제1 야당을 친일 프레임으로 옭아매려 하니 한국당으로서는 추경안이라도 볼모로 잡고 저항하려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추경안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여당의 일방 독주에 마땅히 대응할 카드를 갖지 못했다는 점을 이해하더라도 더 이상 추경안 처리를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안건 처리가 너무 늦어지면 결과적으로 국익에 손상이 가고 그 책임을 한국당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추경안 내용에 대한 불만은 일단 상임위와 본회의를 통해 제기하면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정도다. 추경안 내용 중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항목이 들어 있다면 그 역시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 과정에서 조목조목 문제점을 찾아내 논리적으로 비판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어차피 국정 운영의 책임은 정부와 여당이 지는 것이니 하는 말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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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정부·여당으로서는 추경안 처리가 미뤄지는 데 대해 조급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안건 처리가 더 이상 늦춰질 경우 확장적 재정 운용 기조를 유지하기도, 투입한 재정만큼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워진다. 홍 부총리가 보도자료를 돌리고, 3당 원내 사령탑들을 일일이 찾아가 하소연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추경안 처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일부 사업들에서는 심각한 차질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사업 자체를 폐지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중엔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이나 강원도 산불 지원 등 민생과 직결된 사업들도 포함돼 있다.

추경안 처리 지연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산 당국으로서는 추경안이 확정되지 못함에 따라 내년도 전체 예산과 사업별 예산 규모를 정확히 가늠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홍 부총리의 말처럼 당장 9월 정기국회에 대비하려면 정부는 8월 중 예산안 편성을 마쳐야 한다.

그뿐인가. 추경을 통해 확보된 재정이 제때 투입되지 못하면 올해 한국은행이 수정제시한 2.2% 성장률 달성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수일 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새로 제시된 성장률 전망치가 추경안 통과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거꾸로 풀이하면 추경 처리가 불발되거나 너무 늦어질 경우 2.2% 성장도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추경안은 8월을 목전에 둔 지금까지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추경안을 속히 처리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은 한국당이 안건 처리에 동의하는 것밖에 없다. 지금까지 안건 처리가 지연된 책임 소재를 하나하나 따지는 것은 그 뒤에 해도 좋을 일이다. 모든 일엔 우선 순위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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