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극약 처방을 끝내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국가란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시 개별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한 국가를 말한다. 27개국으로 구성된 화이트국가 리스트에는 웬만한 친서방 국가들이 망라돼 있다. 미국·캐나다 등 북미 국가와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각국, 호주·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주 국가들, 그리고 남미의 아르헨티나 등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과거 공산권 국가였던 체코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의 한국 배제는 곧 일본이 한국을 더 이상 안보상 우방이 아니라고 만천하에 공지하는 것과 같다. 갈 데까지 한번 가보자는 심산이 아니라면 취할 수 없는 조치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제외되면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일본 제품을 수입할 때 품목별로 일일이 경제산업성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 방식이 3년만에 한번 심사가 이뤄지는 포괄심사에서 개별심사로 바뀌는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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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심사는 최대 90일 동안 이뤄지며, 이를 바탕으로 수출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 기간도 기간이지만 개별심사 대상이 되면 수출 신청 절차도 한결 복잡해진다. 수입을 원하는 우리 기업은 전에 없던 안보 관련 서약서 등을 제출해야 하고, 물품을 수출하려는 일본 기업은 제품명과 수량, 판매처 외에 수출품의 최종 도착지, 수입 희망자의 수입 목적, 목적의 타당성 등을 일일이 경제산업성에 보고해야 한다.

안보상 일본의 적대국으로 관련 물자가 흘러갈 가능성이 없는지를 분명히 입증할 것을 자국 수출업자에게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입증이 제대로 안 됐다고 판단하면 수출을 못 하게 할 수도 있다.

일본은 이 같은 목적을 지닌 대한(對韓) 수출 규제 계획을 지난 1일 공표했다. 그 내용 중엔 특정 품목 세 개에 대해서는 지난 4일부터 개별심사가 이뤄진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이후 지난 24일까지 자국민들을 상대로 의견 수렴을 했다. 아직 상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1만여 건의 의견이 접수됐고 그중 수출 규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90%를 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은 여론조사 결과를 새달 1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다음날인 2일 각의를 열고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내용을 담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정령인 수출무역관리령은 우리로 말하면 시행령에 해당하기 때문에 각의 의결만으로 개정이 가능하다.

일본 정부는 26일 현재까지 각의 일자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현지 언론들은 2일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 각의는 화·목요일 열리는데 이 날 개정안 의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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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의에서 의결된 개정안은 경제산업상의 서명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연서를 거쳐 나루히토 일왕에 의해 공포된다. 정령 개정안은 공포 시점을 기준으로 21일 이후부터 효력을 발한다.

이 모든 절차가 예상대로 진행될 경우 다음 달 말 개정안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앞서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 도쿄무역관도 보고서를 통해 화이트 국가 제외가 이르면 8월 중 실행될 것이란 현지 분위기를 전해온 바 있다.

그러나 그 사이 일본의 움직임은 몇 개의 변곡점을 만나게 된다. 그중 하나가 다음 달 1일부터 사흘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 외교 장관이 회동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도 이 행사에 참여하는 만큼 한·미·일 3국의 외교 수장이 한자리에 모여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 당국도 “조율중”이라며 물믿 작업이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새달 24일도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의미한 날로서 관심을 끈다. 이날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날이 될 가능성이 큰 시점이다. 협정 만기 석달 전인 이날까지 어느 일방이 협정 종료 의사를 서면으로 제출하면 GSOMIA는 효력을 잃는다. 반대로 양측 모두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으면 협정은 자동으로 1년 더 연장된다.

현재 일본은 협정이 지속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정부가 일본은 물론 일본 설득에 나서지 않고 있는 미국을 은근히 압박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GSOMIA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결정도 내려지지 않았다”며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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