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중반부에 우리 사회에선 한동안 ‘D공포’가 회자된 바 있다. 당시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경제가 디플레 초입에 접어들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됐다.

디플레이션 논란의 재연은 지금의 우리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직접적 원인은 경기 부진의 장기화와 저물가 현상의 지속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달까지 7개월째 0%대 상승률(전년 동월비)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 부진과 저물가가 상호작용하면서 D공포에 대한 논의가 재발되고 있지만 경제 현황에 대한 정부의 진단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정부는 최근의 저물가 지속이 국제유가 하락과 농산물 가격 안정화 등에 의한 것이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반영한 듯 통계청은 지금 상황을 ‘디스인플레이션’이란 말로 설명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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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인플레이션은 본디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은 아니다. 정확한 의미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정부 당국이 취하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은 초과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고의로 이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 상황이 결코 디플레는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이다. 디플레이션은 초과 공급이 존재하는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정부는 현 상황을 미약한 인플레이션으로 진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통계청 관계자는 “총체적 수요 감소에 의해 물가가 하락하는 것이라기보다 기후변화와 유류세 인하 등 외부 요인, 그리고 집세와 공공서비스 요금 인하 등 정책적 측면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정부와는 다소 결이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연구원은 현 상황을 사실상 ‘준(準)디플레이션’으로 진단했다. 연구원은 준디플레 현상이 초래된 원인과 관련해 수요 측면에서는 물가 하락 압력을, 공급 측면에서는 물가 안정화를 지적했다. 또 저물가와 경기 부진이 상호작용을 일으킨 결과 준디플레 현상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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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을 디플레로 단정하는 의견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도 우리의 현실은 아직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하는 디플레 기준을 충족하지 않고 있다. IMF는 물가 하락과 경제 침체가 2년 정도 이어지는 것을 그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디플레 도래 가능성을 거론하는 내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구나 그 같은 목소리가 수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는 점, 경기 부진과 저물가가 단시일 내에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 등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들이다.

디플레에 대한 경계심 표현은 지나치다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도 남다른 경계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게 더 잘못된 일이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경제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든다. 물가가 떨어짐으로써 기업의 수익이 줄어들고 그로 인해 생산과 성장률, 고용 등이 덩달아 감소하면서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든다.

준디플레이션이든 디스인플레이션이든, 지금으로서는 현 상황이 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을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추경 등을 통해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하되 효율성 제고에 특히 신경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퍼주기식 재정 집행을 지양하고 대신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경제의 활력을 자극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는 뜻이다.

통화정책 또한 총수요 확대에 초점을 맞춰 운용할 것이 권장된다. 기준금리 수준이 높지 않아 정책을 집행할 여력이 크지는 않지만 미국이나 유로존, 일본 등의 통화정책 흐름을 감안해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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