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향한 2차 보복 절차에 돌입했다. 안보상 우방국들에게 부여했던 최혜국 대우 대상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예정대로 이행될 경우 이 조치는 이달 말부터 효력을 발한다.

일본 정부는 2일 오전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수출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수출관리령은 우리의 시행령 격인 정령에 해당하므로 의회 동의 없이 각의 의결만으로 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령 개정안을 주도한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성 장관은 이날 각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령 개정안을 7일 공포해 28일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개정안은 곧 세코 장관의 서명과 아베 신조 총리의 연서를 거친 뒤 일왕에게 전달된다. 일왕이 이를 공포하면 21일 이후부터 개정안의 효력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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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일본 정부가 자국내 언론들을 통해 예고한 것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을 추진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세코 장관이 일정을 상세히 공지한 데는 일본 정부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국내외의 일부 언론은 일본 각의가 정령 개정안을 의결하더라도 공포 등의 일정을 지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본은 이번 조치가 일본 경제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데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세코 장관은 “기본적으로 이번 조치로 인해 일본 기업에 대한 영향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제 사회에 연쇄 효과를 일으키지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반적으로 국제공급망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 기업들의 피해도 크지 않을 것이란 논리를 편 것이다.

일본은 이날도 화이트국가 제외 조치가 한국에 대해 특별히 불이익을 준 것이 아니라 비정상을 정상화한데 불과하다는 식의 억지주장을 펼쳤다. 세코 장관은 “수출상의 절차를 제대로 하겠다”고 주장하며 이번 조치가 그 일환으로 취해진 “국내 조치”라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비슷한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치는 어디까지나 우대 조치를 철회해 아세안 국가나 대만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같은 방식을 취하는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금수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화이트국가 배제가 징용공 판결과 무관하다는 점도 함께 주장했다. 세코 장관은 이번 조치가 한국 측의 수출관리상의 문제에서 비롯됐음을 주장하면서 “(징용공 판결) 대항 조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 [사진 = A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향해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라는 적반하장식 요구를 내놓았다. 세코 장관은 “신뢰하면서 대화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한국의 책임”이라며 “한국이 발표를 정정하는 것을 포함해 성의있는 대응책을 내놓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의 실무협상을 두고 한국이 ‘협의’라는 표현을 쓴데 대해 다시 한번 이의 제기를 한 것이다. 일본은 당시 만남에서는 자국 측의 ‘설명’만 있었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규제 철회 요구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한 주장”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에두른 주장들이지만 사실은 징용공 판결과 관련해 한국 측이 ‘성의 있는’ 조치를 내놓으라는 억지 주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이번 조치로 한국은 향후 음식료나 목재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물품에 대해 수입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3년에 한번 일괄적으로 하던 포괄심사를 개별심사로 전환함으로써 한국으로 향하는 수출품은 일일이 경제산업성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심사 기간 90일을 모두 채우고도 수출이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심사 기간을 모두 채운 뒤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경제산업성이 각종 서류 중 미비한 점이 있다고 트집을 잡으면 마땅히 대응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금수 조치가 아니다”라는 일본 측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물품 수입이 제 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 통상 당국이 어느 물품에 대해 어느 정도의 규제를 가할지도 지금으로서는 전혀 가늠할 길이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이 전적으로 칼자루를 쥔 채 마음대로 변덕을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변덕으로 필요한 물품이 제대로 수입되지 않으면 반도체의 경우 오는 9~10월부터는 본격적인 어려움에 처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얼마나 광범위하게 규제가 이뤄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금융기관들은 일본의 규제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수출에 큰 차질이 생기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예상되는 성장률 하락 폭으로 유진투자증권은 0.6%P 이상을, 하나금융투자는 최대 0.8%P를 제시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일본의 조치에 유감을 표하면서 강력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일본의 조치를 “사태를 악화시키는 무모한 결정”이라 규정했다.

이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 보복”, “중대한 도전” 등의 강력한 표현을 구사하며 일본이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또 우리도 강력한 맞대응책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가해자 일본이 적반하장식으로 큰 소리 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부당한 조치를 철회하고 즉각 대화의 길로 나오라”고 말했다. 강력히 대응해 나가되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겠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을 향해서는 “일본을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일깨우며 “함께 단합해달라”고 당부했다.

홍남기 부총리도 정부합동브리핑을 통해 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정부가 준비해온 각종 대응책을 공개했다. 대응책엔 우리도 일본을 화이트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을 포함해 식품 및 관광과 관련한 안전조치 철저화, 수입 다변화, 생산설비 증설 지원, 소재부품 기술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 국제공조 강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이 망라돼 있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일본과 맺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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