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무역전쟁을 넘어 환율전쟁 영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방아쇠를 먼저 당긴 쪽은 미국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미 재무부는 같은 날 오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했다.

이번 조치는 매년 4월과 10월에 환율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관찰대상국과 환율조작국을 분류해 발표해오던 관행을 깬 것이어서 ‘전격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의 경우 현재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돼 있다. 환율조작국은 아니지만 그럴 개연성이 있으므로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는 국가로 분류된 것이다.

미국이 환율 조작 여부와 관련해 교역 상대국을 나누는 기준은 세 가지다. △현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200억 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GDP 대비 3% 초과) △환율시장의 한 방향 개입(GDP 대비 순매수 비중 2% 초과) 등이 그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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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은 이번에 이상의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교역촉진법 대신 종합무역법에 의거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위의 세 가지 조건을 토대로 중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한 전례를 의식해 이번엔 종합무역법을 근거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환율조작국 결정이 갑자기 이뤄진 직접적 계기는 ‘포치’였다. ‘포치’란 ‘破七’의 중국어 발음으로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7을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그동안 달러당 7위안을 마지노선으로 삼아 환율을 관리해왔다. 위안화 환율이 이 선을 넘어가면 중국내 외화 자금 이탈 현상이 벌어지면서 금융시장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5일 위안화 환율이 7을 넘어가자 미국은 중국이 의도적으로 이를 방치함으로써 교역상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통해 드러났다. 그는 ‘포치’가 발생한 당일 오전 트위터에 “중국이 통화 가치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주장하면서 “환율조작”이라고 단정했다.

미국은 중국이 환율 상승을 조장 또는 방조함으로써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고율 관세 효과를 상쇄하려 한다는 의심을 품어왔다. 양국 간의 무역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대한 불만도 이번 조치의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중국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 관련법상 부과될 수 있는 조치는 그리 무겁지 않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대체적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법적 조치보다는 정치적 조치가 보다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예상되는 제재 내용으로는 미국 기업들의 중국내 투자 제한, 중국 기업들의 미 조달시장 참여 금지 등이 거론된다. 그러다 이보다 치명적 조치는 역시 고율관세 부과가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단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발언에서 찾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신이 당선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4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정황상 미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추가로 고율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벌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나라를 오가며 열리는 고위급 협상에서 유리한 국면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두 나라는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이틀간의 고위급 협상을 벌였고, 다음 달엔 워싱턴에서 후속 협상에 나선다.

[사진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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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공세를 강화하자 중국은 일단 꼬리를 내렸다. 미국의 조치가 나온 직후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성명을 통해 환율 조작 의혹을 부인하는 한편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이어 미국이 스스로 정한 기준도 어긴 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고 비난했다. 인민은행은 또 미국의 조치를 “제멋대로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로 단정하면서 중국은 그 같은 행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성명엔 미국을 달래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위안화 환율이 합리적·균형적 수준에서 안정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는 다짐이 그것이었다. 환율 안정을 위한 가시적 조치도 이어졌다. 이와 관련, 인민은행은 오는 14일 홍콩에서 중앙은행증권 300억 위안어치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 위안화 환율 상승세는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중앙은행증권은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단기 채권으로서 시중 유동성 조절을 위해 발행된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을 향해 최소한의 성의를 표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유화적 반응은 예고된 것이란 시각이 많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 내놓을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게 그 배경이다. 미국 국채 최대 보유국이라는 점을 이용해 국채를 일거에 내다 파는 방법이 거론되곤 하지만, 그럴 경우 중국이 입을 손실 또한 만만치 않다. 채권 가치 하락 외에 외환시장 불안정성 증대로 인해 중국이 입을 손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고율관세로 맞대응하자니 대미 수입액이 수출액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실탄이 너무 적다. 그러다 보니 중국이 미국에 맞서기 위해 내밀 카드로는 이미 시행중인 농산물 수입 제한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은 기존의 무역 협상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기 위한 제스처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본격적인 환율전쟁으로 치닫을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는다.

미국도 중국의 태도 변화에 다소 누그러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의 래리 커들로 위원장은 6일 미국 CNBC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오는 9월 중국 협상팀이 (워싱턴으로) 올 것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받을 영향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미국에 의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전보다 낮아졌다. 최근 들어 매년 대미 무역 및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조작국보다 한 단계 아래인 관찰대상국 지정에서도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가 제기돼왔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6년부터 감소세로 전환했으며 지난해 흑자 규모는 전년보다 22.9% 줄어든 138억 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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