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엔 전력공급이 무리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전기가 남아도는 덕분에 여름철이면 나타나곤 하던 긴장 상황의 재연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일 전력거래소(KPX)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전력수요가 최대치에 이르렀던 때는 입추 다음날인 지난 9일이었다. 당일 최대전력 수요는 85.9GW였다. 이 수치는 지난해 7월 24일 기록된 최대전력수요(92.5GW)에 비해 6.6GW나 낮아진 것이다.

최대수요가 적은 만큼 올 여름 발전설비 예비력은 37GW까지 올라가면서 관련 자료 집계가 시작된 200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발전설비 예비력은 전력수요가 피크에 이른 시점에도 가동하지 않고 남겨둘 수 있는 설비의 용량을 지칭한다. 여유분을 비율로 치면 44%에 이른다.

한국전력의 전력수급 비상훈련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한국전력의 전력수급 비상훈련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원전 1기당 발전 용량이 대개 1GW 또는 그 남짓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는 전력수요가 피크에 이른 시점에도 원전 30기 이상에 해당하는 발전설비를 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설비예비력을 전력공급 능력과 직결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태양광발전 설비의 경우 날씨에 따라 전력생산 능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올해엔 날씨 변수와는 무관한 발전 공급능력도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8일 기준 공급예비력은 12.9GW(예비율 15.2%)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력수요가 피크를 이뤘던 9일의 공급예비력도 11.9GW(예비율 13.9%)를 유지했다. 공급예비력은 전력 피크 시점에 소비되는 것 이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다.

현재 정부는 공급예비력을 기준으로 전기수급 관리 단계를 구분하고 있다. 공급예비력이 5GW 이상이면 정상으로 간주하고 그에 못 미칠 경우는 차례로 준비,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으로 분류해 대응한다.

올해의 넉넉한 전력 보유 상황을 두고 몇 가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설비예비력이 반드시 전력 공급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설비의 증가는 전반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키우는 게 사실이다. 올해 전기가 남아도는 이유 중 하나로 발전설비 증가를 꼽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실제로 관련 통계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발전설비 용량은 전년보다 3.9GW 증가했다. 이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의 증가폭이 3.1GW를 차지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올해 여름철 무더위 정도가 작년에 비해 덜하다는 점도 전력 수요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력 수요의 또 다른 변수인 전기요금은 가정용 전기 사용에 대한 누진구간 확대 조치로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의 이유들만으로는 올해 전력 사정이 갑자기 좋아진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력수요 감소의 진짜 이유는 경기 부진, 그 중에서도 제조업 경기 부진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자료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한국전력이 작성한 ‘전력통계속보’ 제488호(2019년 6월)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의 전체 전력 판매량은 2억5986만MWh였다. 이를 용도별로 분류하면 가정용이 3385만MWh(전체 대비 13%), 제조업용이 1억3060만MWh(전체 대비 50%)를 차지했다.

눈여겨볼 점은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 증감률이다. 전년 동기 대비 올해 상반기 증감률은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0.7%를 기록했다. 용도별 판매량 증감률은 가정용이 1.0%를 기록한 반면 제조업용은 마이너스 0.7%를 기록했다. 전체 전력 판매량의 절반 정도를 소화하는 제조기업들이 전기를 덜 쓴 것이 한전의 전체 전력판매량을 줄어들게 한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력 수요가 경제의 활황 정도와 깊이 연관돼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전력거래소가 2017년 7월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 ‘수요전망 워킹그룹 회의’에서도 이를 입증하는 회의결과가 도출됐다.

전력거래소는 회의를 마친 뒤 논의 내용을 토대로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관련한 장기전력수요 전망을 공개했다. 골자는 2030년의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가 101.9GW로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2년 전의 7차 계획 때 마련된 전망치보다 11.3GW나 줄어든 수치다. 그 근거는 전력수요 전망치 산출의 전제가 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7차 때의 3.4%에서 2.5%로 변경된 것이었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GDP 증가율이 0.9%포인트 내려갈 경우 전력 수요가 11GW 이상, 즉 원전 11기 정도가 생산해내는 전력량이 덜 사용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전력수요 예측에서 GDP가 차지하는 비중을 70% 정도로 보았다.

2030년 전력수요 전망치를 7차 계획 입안 때보다 대폭 줄인 것을 두고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제 활성화 정도가 전력 수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 회의를 통해 제대로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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