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카드를 뽑아들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실상 예고한 대로였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자본주의 경계선을 넘나든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논쟁적인 제도다.

이로 인해 이 문제는 시행 과정에서도 두고두고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시장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균형가격을 무시하고 일정 수준에서 한계선을 그은 뒤 가격을 통제하려 한다는 게 논란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찬성론도 만만치 않다. 특정 개인의 이익을 다소 침해하더라도 공익이 더 크다면 문제삼을 수 없다는 게 그 같은 주장의 논리적 기반이다.

12일 국토부는 여당과 협의를 가진 뒤 곧바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했다. 공공택지에 짓는 아파트에 주로 적용하던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보다 폭넓게 적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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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치는 정부가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법률 개정이 아니므로 국회 논의 절차는 필요치 않다. 국토부는 주택법 시행령 중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을 손질함으로써 그동안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해당 조항의 효력이 살아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는 동법 시행령 61조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필수 요건을 손질한 것이다. 기존의 ‘3개월간 해당지역 주택가격 상승률이 해당 지역이 포함된 시·도의 물가 상승률의 2배 이상’ 부분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바꿨다.

이로 인해 과거엔 웬만하면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던 지역들이 다수 상한제 적용 대상에 포함될 운명에 놓였다. 현재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은 서울 전체(25개구)와 과천, 성남 분당, 광명, 세종, 하남, 대구 수성 등 31개 지역이다.

이번 조치는 2007년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것과 달리 특정 지역을 골랐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특정 지역 주민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됐다. 당연히 해당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볼 수 있다.

더 첨예한 쟁점은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사업계획을 짠 뒤 이주를 시작했거나 이주까지도 끝내고 철거 작업을 앞둔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 등의 사익 침해 문제다. 이는 국토부가 주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건축·재개발에 한해 분양가 상한제 효력 발생 시점을 앞당긴 데서 비롯됐다. 개정안은 그 시점을 기존의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에서 ‘최초 입주자 모집 승인 신청’으로 변경했다.

이는 이미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단지가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는 것을 막고, 동시에 후분양 등을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손길에서 벗어나 분양가 제약을 피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조치다.

후분양 적용 시점 변경으로 불이익을 보게 된 관리처분계획 인가 아파트는 12일 현재 66개 단지 6만8406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표적인 곳이 이주가 끝나고 곧 석면제거 작업에 들어가는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아파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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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재건축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진작부터 후분양제 적용이 소급 입법을 금지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움직임을 보여왔다. 일부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동의를 구하는 등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청원인은 ‘분양가 상한제 추진 중지해주세요’란 제목의 글을 통해 국토부의 조치를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위법적이고 부당한 정책”이라 단정한 뒤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 한다”라는 헌법 내용을 상기시켰다. 국토부의 조치에 위헌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재건축 조합원들이 말하는 이익은 법률상 보호 대상이 아닌 ‘기대이익’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 같은 기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공익을 해칠 수는 없다는 것이 국토부의 논리다.

당사자들의 반발과 별개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옹호론자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전반적으로 주택 가격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부동산 시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그간의 높은 분양가가 기존 주택 가격의 상승을 이끌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 대책이 집값의 하향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정부 조치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심리적 위축과 거래 관망, 저렴해진 분양 아파트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서울 집값의 상승세가 주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분양가 상한제가 로또 아파트를 양산하고, 장기적으로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정체되면서 주택공급 물량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이미 시장에 나온 신축 아파트의 가격만 올릴 것이라는 게 반론의 주요 내용들이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장기적으로는 재건축 중단 등에 따른 공급 감소로 인해 새 아파트의 희소성이 커져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또 아파트 당첨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세 대기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전세 시장이 불안정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적은 지역일수록 전세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다.

국토부는 로또 아파트 당첨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매 제한 기간을 최대 10년까지 늘리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팔아야 돈’이기 때문에 전매 제한 기간을 길게 두면 투기가 성할 일은 없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강남 등 요지의 재건축은 부자들만이 분양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수십년 동안 주택을 보유한 거주자 조합원의 이익을 빼앗아 부유한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안겨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의 신규 적용은 예정대로 추진될 경우 오는 10월부터 효력을 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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